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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터널로 진입하는 '대북 열차' /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필자는 북한을 연구하기 시작한 지 38년이 됐는데, 그동안 칼럼이나 논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대북정책을 소개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할 수 있는 조언이 사실상 사라졌다. 최근 세계 정치의 큰 변화 때문에, 대북정책에서 한국이 움직일 공간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운전자론'은 인기가 많았다. 2018~2019년에 '한반도의 봄'을 이끄는 세력이 바로 문재인 청와대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이 주장은 실제와 별 관계 없는, 매우 과장된 정치 선전이었다. 그럼에도 2018~2019년 무렵 한국, 미국, 북한 등 관계국들은 어느 정도 움직일 공간이 있었으며, 대북정책이라는 사륜구동 차량은 험악한 길을 주행하고 있었다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사륜구동에 탄 승객보다 길고 긴 터널로 들어가는 기차에 탑승한 승객과 훨씬 비슷하다. 방향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차량과 달리, 기차는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 변화를 불러온 양대 원인은 2017년 채택된 대북제재 그리고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대립이다.

 

필자는 1990년대부터 남북 교류·협력을 많이 지지해왔다.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긴장감을 완화하기 위해서, 북한 주민의 생활 개선을 위해서도 포용정책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000년대가 아니다. 오늘날 남북 교류를 하자는 주장은 무의미한 헛소리가 됐다. 물론 지금 보수 행정부는 포용정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보 행정부가 있다고 해도, 북한과 교류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임 문재인정부는 거의 3년 동안 대북 접촉과 교류를 위해 노력했지만 평양에서 온 대답은 무시, 욕설과 위협뿐이었다.

 

북한은 포용정책에 왜 관심이 없을까? 쉽게 말하면 현 상황에서 남북 교류로 돈을 얻을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을 그저 버튼을 누르면 현금이 나오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생각한다. 과거에 북한이 가끔 문화 교류나 이산가족 상봉 등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당시에 이러한 교류들이 경제 원조와 하나의 패키지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북 제재 때문에 한국은 북한에 유의미한 경제 지원을 제공할 수 없으며, 대신에 인도적 지원이나 문화 교류를 제안해왔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 이것은 무가치한 헛소리일 뿐이다.

 

중국의 대북 지원도 중요한 요인이다. 미·중 대립 때문에 한반도 북부에서 완충지대가 더욱 절실하게 된 중국은 북핵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눈을 감고 지속적인 대북 원조를 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에서 필요한 만큼 원조를 얻게 된 북한에 한국의 가치는 더욱 내려갔다. 한편으로 북한은 핵과 운반수단 개발에 더욱 열중할 것이다.

 

이미 20년 전부터 필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희망조차 없기 때문에, 비핵화보다 핵 관리를 과제로 봐야 하며, 타협을 이루기 위해 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세계의 현 상황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회담이 시작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 미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북핵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사라졌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전할 말이 "헬로, 끝" 두 단어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미국의 태도를 매우 잘 표시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는 향후 몇 년 동안 궤도를 따라가는 기차처럼 움직일 것이다. 남북 관계는 동결 상태를 지속하고,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많이 하며, DMZ나 NLL에서 긴장감이 가끔 고조되고, 그때 미국은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보내 억제력을 보여줄 것이다. 각기 국가 이익을 감안하면 논리적인 행동이지만, 그 결과 위기가 생길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 하지만 지금 터널로 진입하고 있는 기차에서 내릴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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