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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시대의 '춘풍추상' / 박규철(교양대학) 교수

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⑰_박규철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후마니타스 리더십 연구소장

 

 

트로이 목마.   사진=박규철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로남불’의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디세우스(Odysseus)의 ‘춘풍추상의 리더십’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위기가 있고 유혹이 찾아온다, 특히, 리더(Leader)에게는 더 많은 위기가 있고 더 강한 유혹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가짜 리더는 위기와 유혹에 굴복하나, 진짜 리더는 그것을 극복한다. 오디세우스는 ‘실천적 지혜’와 ‘절제’로 무장하여 위기와 유혹을 극복한 리더다. 그 많은 영웅들 중에서 그만이 살아 귀향할 수 있었다. ‘아이아스(Aias) 문제’를 해결하고 ‘로토파고이(Lotophagoi)의 유혹’과 ‘칼립소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자신에게 추상같고 타자에겐 춘풍같은 리더십의 원형이 바로 그였다.      

 

아이아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의 ‘춘풍리더십’이 빛을 발한다. 트로이 전쟁의 막바지에 맹장(猛將) 아킬레우스가 죽자, 테티스 여신은 아들의 무구(武具)를 “가장 용감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공언한다. 이에 용장(勇壯) 아이아스와 지장(智將) 오디세우스가 후보에 오른다. 최후의 승자는 오디세우스가 차지한다. 분노한 아이아스가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 등을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아테네 여신이 그들을 구해준다. 수치심에 몸부림치던 아이아스는 자살한다. 아가멤논은 그를 법대로 처리하자고 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가진 채, 그 문제를 처리한다. 아이아스에 대한 장례가 치러지고 그의 명예 또한 회복된다. 양분(兩分)의 위기에 놓여 있던 그리스군이 통합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춘풍리더십이 있었던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첫 번째 ‘추상리더십’은 ‘무책임의 유혹’을 벗어나는 데에서 성립된다. 로토스(Lotos) 섬의 ‘로토파고이(Lotophagoi:연꽃을 먹는 사람들)’들은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에게 신비스러운 환각식물인 로토스를 선물한다. 부하들은 그것을 먹고 귀향 의지를 망각한 채, 무기력과 무위도식의 늪에 빠졌지만, 오디세우스만은 무책임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사실, 귀향을 방해하는 것은 키클롭스같은 괴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꽃을 먹는 사람들의 친절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었다. 이처럼,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귀향을 가능케 했던 것은 오디세우스의 추상리더십이었다.    

 

오디세우스의 두 번째 추상리더십은 칼립소의 성적 유혹을 이겨내는 데에서 성립된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오기기아(Ogygia) 섬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죽고 말았다. 지혜와 절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섬에는 칼립소라는 바다의 요정이 있었다. ‘칼립토(숨기다 또는 덮다)’라는 개념에 내포하듯이, 그녀는 오디세우스의 귀향 의지를 숨기고 무력화시키는 존재였다. 그들은 7년간이나 동거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륜과정에서도 오디세우스는 귀향에 대한 의지와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정체성의 근거인 왕국과 부인 그리고 아들이 고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사(不死)의 능력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유혹도 뿌리친 채, 그는 필사(必死)의 존재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이타카로 갔던 것이다. 이처럼 오디세우스의 추상리더십이 그를 존재의 근거인 고향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제6공화국의 여덟 번째 정부가 출범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새 정부의 과제로 ‘국민통합’과 ‘부정부패 척결 및 적폐청산’을 주문한다. 오디세우스의 춘풍추상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전 정부들도 춘풍추상의 리더십을 실천하고자 했다. 하지만 ‘내로남불의 함정(trap)’에 빠져 실패하고 말았다.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동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독(愼獨)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머리 위에는 ‘다모클레스(Damokles)의 칼’을 올려놓고, 타자에게는 나우시카아(Nausikaa)의 환대(Xenia, Hospitality)의 정신을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다. 
 

박규철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후마니타스 리더십 연구소장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월간 <에머지> 및 <넥스트> 편집장 그리고 아신대 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의심하는 인간』, 『그리스 로마 철학의 물음들』, 『플라톤 철학과 회의주의』, 『그리스 계몽주의와 신플라톤주의』, 『글쓰기와 토론을 위한 플라톤의 국가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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