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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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럽의 건축 감성을 한 눈에 / 윤재은 (실내디자인) 교수

'집이란 무엇일까?' 동굴 속에서 산 고대인들에게는 사나운 짐승들을 피하면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에게는 또한 '집이란 무엇일까?' 이 평범한 질문 아래 그 동안 한 번도 다른 의문을 가져 본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집에 대한 나의 개념을 단번에 바꾸어 주기에 충분했다. 현대 건축에서 집이란 단지 추위를 피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예술품이었다. 그 기능성과 건축가의 사유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 *건축은 나무다.(Architecture is a Tree.) * 
 
ⓒ 윤재훈
언젠가 건축가 친구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건축'하면 맨 처음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왜' 짓는가 보다 '무엇' 때문에 짓는가"가 중요하다고. 어떤 사람이 살 것인가? 사실 건축도 의복처럼 그 사람의 취향 따라 달리 지어져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 속에서도 집이란 그냥 추위만을 피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다.

하기야 우리의 옛 사찰 하나하나가 어디 그냥 지어놓은 것이 있는가?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날아갈듯 추녀 끝에 건너편 산등성이와 시원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는가. 또한 현대인들처럼 돈이 있다고 고즈넉한 산 속에 무조건 크고 웅장하게 짓지도 않았다. 넉넉한 배흘림기둥 속에 비치는 저녁햇살의 여유로움 또한 얼마나 달가운가.

천 년이 지나도 그 고색창연함을 잃지 않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그 단청, 돌계단. 우리 선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건축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각광받고 있는 나무집이나 흙집. 고드름 맺히는 겨울날, 하루 종일 식지 않는 뜨끈한 구들장하며, 그 과학적인 고래는 또 어떠한가.

그러나 도시를 나가 보면 획일화된 성냥갑 같은 집들이 아무 곳이나 무분별하게 서있다. 단 일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도로계획은 하루가 멀다않고 뜯어내어 새 것으로 갈고, 시민들의 매연 때문에 잠시 서 있기가 버겁다.

바람이 길을 잃고 있다. 도시는 거대한 매연의 돔(Dome)을 형성하여 공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 기능성과, 짓는 의미를 살릴 집들이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뒤늦게나마 서울시에서도 획일적인 건축물에 허가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디자인 적인 요소가 가미된 건물에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지켜볼 일이다.

이 책은 공간이라는 무형의 생산자위에 던져진 건축의 의미를, <건축은 나무다>라는 단초에서 출발하고 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하늘에서 바라본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는 <나무>였다. 위대한 건축도 사유의 눈으로 바라보니 땅 위에 세상을 만들어가는 개미집과 같다" 라는 작가의 잠언적 성찰에서 우리는 건축에 대한 더욱 무한한 나래를 펴볼 수 있다.

특히 유럽의 근 ? 현대건축 답사를 통해 공간에 얽힌 사연과 이름들을 은유의 미학으로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어, 건축을 전공했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해하기가 쉽게 구성되어 있다. 한 쪽은 건축물의 사진과 다른 쪽은 그 건축물에 대한 사유가,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 술술 시로 풀려나오고 있다.

이 책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집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런 유럽 건축의 어제와 오늘, 그 정수가 우리들의 눈에 낯설게, 때로는 얼음장처럼 쨍, 하게 다가온다.

공간 철학자 윤재은 교수(국민대)는 오래 전부터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여름 방학 때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44일 동안 유럽대륙을 강행군 했다고 한다. 그 첫 장을 펼쳐보면 삶의 감성을 은유의 미학으로 노래하는 있는 작가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잘 배어 있다.

공간이라는/ 무형의 생산자 위에/ 던져진 화두는/ 건축이라는 두 글자이다.//두 발로,/ 유럽의 근현대 건축 답사를 통해/ 공간에 얽힌 사연의 이름들을/은유의 미학으로/노래한다.//건축이란?/ 공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의 선택을 통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환희에 찬,/ 한편으로는 우울한,//많은 감정들의 표현과/ 숨겨진 내면의 철학을/ 공간시(空間詩)라는 언어를 빌려/깨어나려 한다.//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하늘에서 바라본/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는/ "나무"였다.//위대한 건축도/ 사유의 눈으로 바라보니/ 땅 위에 세상을 만들어가는/ 개미집과 같다.//창조주의 손으로 빚어진/ 먼 발치의 산은/ 언제나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다.//산 속으로 들어간다./ …… 나무를 본다.//"건축은 나무다"<서시>

 

독자들에게 이것은 무엇으로 보일까? 한 개의 잔처럼…, 아니면 한 척의 배처럼 보일까? 모두 다 아니다. 이것은 건축물이다. 강과 강을 가로질러 연결된 이것은 다리의 역할과 커피숖 및 휴게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배와 강을 결합한 이 사유라니? 그 위에서 노을빛 받으면 마시는 진한 커피향이라니….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은 그야말로 공포스럽다. 지하실을 따라 내려가면 어디선가 텅, 하고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갑자기 내 머리에도 텅, 소리가 나며 싸늘한 기운이 감돌 것 같다. 수많이 영령들이 지금도 떠돌고 있는 것 같은 가스실. 악령들의 허우적거림이 보이는 것 같다.

저 멀리 한 줄기 빛, 그것은 그들에게 유일한 정신적 탈출구였을 것이다. 사방이 갇힌 그 유령과 같은 가스실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까?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봐!/ 우리의 미래는 그렇게 오지 않아// 하늘만 보지 말고 미래를 봐/ 우리의 희망은 그렇게 오지 않아//큰 것만 보지 말고 작은 것을 봐/ 세상은 사소한 것의 집합 속에서 피어나// 직선만 만들지 말고 사선을 그려 봐/ 자연은 나뭇가지처럼 자유롭게 뻗어간 걸// 활만 보지 말고 화살을 봐/ 한 번 당긴 화살은 돌아오지 않아// 남들만 보지 말고 자신을 봐/ 언제나 남을 보고 자신은 보지 않아// 창공을 향해서 힘차게 날아봐/ 나무는 바람을 영원히 기다려 <도시의 가지에 날아오른 새>.

비엔나의 전통적인 아파트 옥상인 다락 공간에 비정형적인 매스(mass)를 가하여, 해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란 하늘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건물 외벽의 색감이 고풍스럽다. 저 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수백 년 내려오는 비엔나의 그 전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예술가들의 마을처럼 근사하게 서 있는 이 건물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독거(獨居)노인들의 실버타운이다. 100세대를 지을 요량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지리적 여건상 87세대의 공간 밖에 나오지 않아, 13세대는 밖으로 돌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화가 복이 되었는가? 우리나라 같으면 시위를 한다 재판을 한다하고 난리를 쳤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로 재탄생했다. 노인들의 그 적막한 마음을 훨씬 더 철학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나는 헤이리 마을에서도 이런 건물들을 본 적이 없다.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이 건물들은 어쩌면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을, 더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 다 떠나가고 몸에 힘도 떨어져 가는 황혼,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차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시절인데. 저 창가에 서서 바라보는 가을 산은 점점 삭정이가 되어가는 자신의 삭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아가 이 건물은 현대 건물에 대한 구조적인 개념을 해체하고 있다. 작가의 느낌이 그만큼 새처럼 자유롭다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