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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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작품으로 담아내는 화가 김태곤 / 미술학부 교수

예술도 한 시대의 감성에 충실해야 한다. 평면 조각 설치 등을 넘나들며 자신의 조형세계를 펼쳐오고 있는 작가 김태곤(40·국민대 교수). 그는 숭례문 화재 당시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스케치 한 장을 남겼다. 작가도 작품으로 아픔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다.

“숭례문을 위한 진혼곡을 작품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숭례문 화재는 우리시대 문화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는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론’이자 참회록을 썼다고 말한다. “숭례문은 한국인에겐 내면에 자리한 정신적 건축물입니다. 역사적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곳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축적돼 있지요.”

주말에 찾아간 그의 작업실에선 한창 작품 ‘숭례문을 위한 진혼곡’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무 얼개 사이로 붉은 낚싯줄들이 공간을 가르고 있다. 줄 사이로 어른거리는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숭례문의 옛 이야기들이 날줄과 실줄이 되어 풀어져 나가는 듯하다.

“한때의 떠들썩함이 아니라 문화작업으로 후대에 이 시대를 증언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는 숭례문을 ‘미래로 나아가는 문’의 코드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사실 작가가 화재사건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두운 공간에 가느다란 실을 연속적으로 팽팽하게 매달아 ‘씨랜드’ 화재사건을 상징하는 건축구조를 재현한 바 있다.

기하학적인 공간이지만 그 속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내재돼 있다. 유럽의 폐허가 된 성당터의 설치작업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소록도의 건축물도 작업에 끌어들였다. 입체작품 ‘불타 버린 교실’ 시리즈도 비참한 화재현장과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색상도 모노톤에서부터 뉘앙스가 있는 다양한 색조를 사용하고 있다. 감성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블루톤은 우울함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이 기하학적 서정으로 불리는 연유다.

그는 모더니즘 이후 인간이 실종된 미술에 ‘가슴’을 불어넣고 있다. 가장 모더니즘적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에 인간의 이야기, 스토리라인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모더니즘 추상과 달리 혼성 추상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기하학의 원류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만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사실주의 동굴벽화 이후, 개념화되고 추상화되는 기하양식을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물들이다. 현대적 건축물들도 기하학적인 공간들이다.

“우리는 기하학적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결국 그 속에서 만들어 가는 사연들이지요.” 그는 사람들이 타버린 숭례문을 바라보고 눈물을 짓는 모습이야말로 기하학적 서정의 웅변이라 했다.

작가에겐 살아 있는 작업정신이 필요하다. 김태곤의 작업에서 그것을 본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22&aid=0001941651
출처 : 세계일보|기사입력 2008-02-19 13:01 |최종수정2008-02-19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