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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토건, 카자흐 ‘1조 아파트 공사’ 개척 / 동일토건회장 고재일동문(경제 60학번)

[문화일보 2006-02-15 16:41]

국내 건축업계는 1만3000개 업체가 뛰고 있는 전형적인 ‘레드오션’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해외진출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업체가 진출하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 역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블루오션이 아니었다. 세계 유수 기업은 물론 우리 업체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는 또 다른 ‘레드오션’이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국내 업체의 관심밖이었다. 2000년부터 해외진출을 기획해온 동일은 이곳을 주목했다. 카스피해 석유생산지를 끼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석유매장량이 세계 6위로 중앙아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라고 불린다. 또 아연매장량 1위, 구리 우라늄 매장량 3위의 자원 강대국이다. 이 자원을 토대로 매년 9%의 성장을 하고 있다. 국민소득은 2004년 2700달러에 불과했지만 상 류층의 소득은 1만 달러 이상으로 생활수준은 유럽과 비슷하다.

국내에서 아파트 사업으로 성장해온 동일은 카자흐스탄의 행정신도시인 아스타나 경제특구에 아파트를 건설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따내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제특구는 관세 등이 면세돼 15%의 이익이 보장되는 금싸라기 땅이다. 국내에서는 아파트 최초로 지상주차장을 없애고 주민자치 체력단련센터를 도입해 명성을 쌓아온 동일이었지만 외국에서 인지도는 낮았다.

현장소장을 맡고 있는 임정환 이사는 “유럽 업체만 알고 있던 이 나라에서 동일하이빌이 아파트를 짓는 것은 맨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동일이 한국에서 지어왔던 아파트를 보자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도 사업추진에 큰 힘이 됐다.

동일측이 사업추진 성공을 확신한 것은 모델하우스가 문을 열던 날이었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한국 아파트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스타나 시민 수천명이 찾아왔다. ‘다모’ 등 한국드라마의 인기에 이은 또 하나의 한류열풍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동일하이빌이 분양한 아파트는 최대 평형 120평형으로 평당 600만~700만원에 이른다. 1인당 국민소득이 연2700달러에 불과한 카자흐스탄에 서는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이들이 타고 온 차들은 벤츠와 아우디 등 독일차가 대부분일 정도로 상류층이었다.

이들은 입주 전 완벽하게 집을 꾸며놓은 한국식 모델하우스에 감 탄했다. 또 추위가 심한 이 지역 주민들은 실내의 바닥이 따뜻해지는 한국식 온돌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동일의 모델하우스 는 이런 입소문 끝에 지난해 10월 모델하우스를 열자마자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타타르스탄 샤이미예프 대통령까지 모델하우스를 찾기도 했다.

현지 분양을 총괄하고 있는 이문주 이사는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1차분 389가구 분양이 성공리에 끝났다”며 “이 나라 상류층의 고급 아파트 욕구를 겨냥한 한국식 아파트로 한류 돌풍을 일 으켰다”라고 말했다. 고재일 회장은 “카자흐스탄의 성공을 발 판 삼아 인근 우즈베키스탄이나 터키 등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권은중기자 jungkk@munhwa.com



<실록, 수출 40년>‘에너자이저’ 고재일 동일토건 회장

60세때 건설업 첫 발 골프 대신 현장 순례 열정·체력 20대 뺨쳐

동일하이빌은 후발 주택업체이지만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아파트 단지내 최초로 지상주차장을 없애고 지상에 실개천이 흐르는 대규모 녹지를 처음 선보인 것이 동일하이빌이었다. 또 아파트 커뮤니티 활성화와 손님맞이를 위한 일종의 카페인 게스트 하우스와 주민전용 단지내 체력단련장·사우나도 동일이 처음 선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런 개념이 처음 도입된 천안 불당 동일하이빌은 주변 아파트와 분양가는 비슷했지만 지역내 가장 높은 프리미엄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획기적인 신개념의 아파트로 동일토건은 설립한 지 10년만에 한해 5000가구의 아파트를 짓 는 도급순위 50위권의 건설사로 뛰어올랐다.
동일하이빌의 이같은 성장 뒤에는 고재일(67·사진) 동일토건 회장이 있다. 그는 ‘통 큰’ 건설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를 다루는’ 회계사 출신이다. 58세였던 95년 그는 ‘좋은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평소 꿈을 이루기 위해 회계사 업무를 접고 건설사 창업에 들어갔다. 다들 은퇴해 노후를 즐기는 60의 나이에 그는 거칠기로 소문난 건설업에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의 체력과 열정은 20대 청년을 연상케 했다. 그의 별명은 에너자이저. 빡빡하기로 소문난 일정을 거뜬히 소화하는 것은 물론 일요일에도 수시로 임원들을 호출하거나 현장을 방문했다.

동일측 한 임원은 저녁 비행기를 타고 1박2일짜리 베트남 출장 을 가본 적도 있다며 혀를 내두룰 정도다. 덕분에 일년에 그의 자동차는 10만㎞의 주행거리를 기록한다.

시간이 아까워 골프도 치지 않는다. 대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아 파트 현장을 방문한다. 현장 방문 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 좋은 나무를 보면 그 나무와 비슷한 나무를 구해서 직접 심을 정도다. 외국에 나가더라도 가장 좋은 주택과 아파트를 반드시 둘러본다. 거기서 얻은 영감은 설계도면에 반영한다.

카자흐스탄의 주택사업도 결국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주택 을 짓기 위한 학습의 과정이라는 게 고 회장의 생각이다. 세계 각국의 주거 문화, 건축 양식, 생활 관습 등의 장점을 파악해 좀 더 나은 주택을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에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모델하우스나 온돌문화를 고집한 것도 이 런 소신에서다.

그의 이런 철두철미한 사업가 정신은 사업초기 시련으로 담금질 된 것이다. 첫사업이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고급빌라를 지었지 만 분양이 안됐다. 결국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부도위기를 맞았다 . 2명만 남겨놓고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잠실에 한 칸짜리 사 무실을 얻어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고 회장은 당시를 “시장분 석에 실패했던 것입니다”라며 “그때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그후 에는 언제나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 했습니다”라고 회고 했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정신 력과 집에 대한 늦깎이의 열정을 토대로 동일토건은 주택사업의 강자로 떠올랐고 마침내 카자흐스탄에 10억달러에 달하는 주택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한번의 시련후 동일은 승승장구했고, 10 년만에 카자흐스탄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었다.

권은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