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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만드는 추상의 '자기복제'…박영남 개인전 / (미술학부) 교수

 

자연을 향한 심상을 색채의 대비 효과와 빛의 깊이로 담은 서정적 추상 회화의 대표작가 박영남(1949~ , 現 국민대학교 회화과 교수) 개인전이 11월 9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손으로 직접 긋거나 바르는 방식을 통해 몸짓과 행위가 강조되는 추상회화를 탐구해 온 작가는 이번 ‘SELF REPLICA’ 전시를 통해 복제의 복제를 통해 만들어진 서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조형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컬러 연작들을 선보인다. 1990년 ‘자기복제’연작으로 시작되었던 자신의 메인 작업 ‘Black & White’와 더불어 이번 전시를 위해 캔버스에 챠콜로 그리드 선을 긋고 좌표 값을 따라 물감을 손으로 묻혀서 그린 200여점의 채색 작업 중 100점을 선별하여 전시를 구성하였다. 금번 전시의 작품들은 캔버스 안에서 선과 면의 분할을 통해 독립 공간들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면 밖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팽창과 수축을 통해 전시 공간 전체와 어우러지는 3차원적 작업으로 심화되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1,2,3 층에서 선보이는 회화 작업들과 함께 지하 1층 전시실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작업 ‘Big Apple’에서는 인공의 빛 대신 자연의 빛 아래에서만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의 ‘빛’에 대한 또 다른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오스트리아의 수도원 공방에서 체류하면서 배우게 된 스테인드 글라스 기법에 매료되어, 작가는 오스트리아의 공방과 독일의 유리 연구소를 오가며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1990년대 말 대전에 위치한 송촌성당 벽면 전체의 스테인드 글라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개인 주택 프로젝트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국내 작가로서는 드물게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을 선보여왔다. 

흑과 백의 미묘한 대립과 조화를 보여주는 페인팅 시리즈, 색색의 단층을 여러 겹의 중첩된 구조로 보여주는 채색 연작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 등 다양한 작업들로 구성된 본 전시는 보다 근원적인 자연의 심상(心象)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는 수련(복제의 복제)을 시도하는 박영남 작가만의 작업 과정과 그 정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박영남의 추상회화

감성의 페인팅
박영남 작가는 이성보다 감성으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주제나 형식은 물론 최소한의 형태도 찾을 수 없으며, 대상이 주는 인상을 조형의 기본 요소인 선, 면, 색채로 바꿔서 재현된다. 그의 회화는 형태나 상황의 단순한 묘사에서 벗어나 색채와 색채들의 관계, 밝음과 어둠, 선과 면의 조화를 통한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작가 스스로도 여러 작업 노트들을 통해 자신의 작업 태도를 ‘내 작업은 다분히 충동적이다’, ‘나는 작품의 주제와 표현의 대상과 의미를 먼저 정하고 이미지와 색채는 종속적으로 따라가는 관행을 거부해왔다’라고 고백함으로써 그의 작업에 대한 해석은 관념이 앞선 이해나 지식의 틀이 아니라 예술적 직관과 감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빛과 색채
박영남 작가의 작업이 원초적이고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자연광과 ‘핑거 페인팅’ 이라는 작업 방식에서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해가 있을 때만 그림을 그리고 해가 지면 작업을 끝낸다는 작가는 인공 조명이 아닌 자연광 아래서만 캔버스 위에 색채를 담는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자연의 빛으로 쌓인 흔적들이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인공의 색채는 더욱 입체적인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작가에게 평생의 화두인 ‘Black & White’ 작업들에서는 자연의 빛이 만들어준 색의 기운과 숭고함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인공의 조명을 제한하고 자연광으로만 작업을 하는 까닭은 어린 시절 그림을 시작하던 출발에서의 학습에 기인한다. 그림을 시작한 유년 시절 덕수궁과 같은 현장에서의 사생을 지속하며 자연스럽게 미술을 학습한 작가는 자연(빛)과 색채에 대한 절대성을 그의 평생에 걸쳐 페인팅에 담고 있다.


역동의 손짓(핑거페인팅)
박영남의 작업 과정에서 가장 큰 특징은 붓 대신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손으로 직접 긋거나 바르는 방식을 통해 몸짓과 행위가 강조된 추상 회화들을 선보여왔다. 쉽게 굳어버리는 아크릴 물감을 빠른 속도로 펴고, 밀고, 문지르고, 긁는 조율의 몸짓을 통해 만들어낸 화면은 자유분방함과 역동성, 생동감을 풍부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전업 작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작가는 붓을 비롯한 그 어떠한 도구도 배제하고 캔버스 위에 작가의 신체로만 회화 작업들을 완성해왔다. 이러한 육체성의 결과로 작가의 회화는 현대미술의 또 다른 원시성과 함께 감성적이면서도 팽창하는 듯한 독특한 에너지를 함축하게 된다. 


그리드 – 표현과 구축
박영남의 페인팅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특징은 손으로 칠하거나 문지른 올오버 페인팅과 함께 칸이나 선으로 나눈 그리드(grid)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그리드는 1988년 처음 등장했고, 1990년작 ‘고흐와 몬드리안’을 거치면서 규칙적인 그리드와 이를 허무는 붓질이 병치된 화면 구성은 그의 작업의 기본 축이 되어왔다. 화면을 문지른 손가락이나 손바닥의 생생하고 분방한 움직임의 기록과 안정적인 그리드의 존재와 호응은 마치 경쟁하듯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그리드를 통해 감정의 발산과 억제라는 균형을 화면에 담아내며, 또한 자유분방해 보이는 작가의 회화들 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질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 <고흐와 몬드리안>(1990년작)
강렬한 색채를 통한 표현은 고흐에게서, 그 강렬함이 증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물로서의 그리드는 몬드리안에게서 가져온 작가는 생생하고 거침없이 표현된 화면과 안정적으로 구축된 그리드 간의 관계를 조율하여 감정의 분출과 절제가 공존하는 장을 보여준다.


복제의 복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은 지속적인 자기 복제(SELF REPLICA) 의 과정이었으며, 앞으로도 자기 복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한 작품이 다음 작품의 모델이 되어주고 서로의 거울이 되어 서로를 모방하고 서로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제의 복제로 양산된 결과물인 작품들은 서로 닮았지만 단 하나도 동일하지 않은 각각의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200여점의 <달의 노래 Acrylic on canvas, 53*45.5cm, 2014>연작 역시 닮은 듯 닮지 않은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가 지금까지 지속해온 15년 동안의 자기복제를 통한 자아성찰이라는 큰 도전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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