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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지속가능 디자인 전략 세우자 / 안진호(대학원 경영학과) 겸임교수

시장의 선도자나 시대의 유행 등을 선동하는 기업과 국가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놓으면, 이를 벤치마크해 더욱 개선된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는 것을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라고 한다. 1970년대 일본 기업과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전략을 주로 채택했다.

우수한 제조업 기반이 있고, 국민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런 기업의 전략과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해 왔다. 그러나, 2016년에도 이런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적 전략이 먹힐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보다 중국 등의 신흥 공업국들이 더 잘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고, 정부도 창조경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벤치마킹해서 따라가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을 쫓아가려고만 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등의 이슈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을 보더라도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는 또다시 빠르게 쫓아가고 있다.

어떻게 우리 스스로 세계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의 우리를 보고 있으면 4차산업혁명은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 만들어 낸 듯 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과학적 기술의 진보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우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기 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먼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했고, 상상해 다양한 추론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용적으로 다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을 구체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완성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막연한 그 '무엇인가'를 누군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관찰하고, 상상하고,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음에는 실체가 없는 것 같고, 상상으로만 여겨지던 것을 남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낸 것인데, 이런 과정을 잘 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 '디자인'이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과학기술만으로는 어렵다. 지금까지 없었던 창의적인 생각을 먼저하고, 그 실체를 그려보는 과정인 '디자인'하는 과정이 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디자인 역량의 인식하고, 기업과 정부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제대로 된 효과가 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디자인을 활용하기 위한 3가지의 조언을 한다.

첫째, 디자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은 모두가 잘 알고 있고, 공감한다. 그러나, 그 활용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인식이 부족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디자인을 생각할 때,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한다. 창조적인 사람을 '디자이너' 같다고 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당연히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디자인에 대해서 평가하거나, 그 활용방식과 가치에 있어서는 디자인은 '상업미술(commercial art)'일 뿐이다. 디자인의 평가는 단지, '예쁘고', '보기 좋게', '멋있게' 그려내는 미술의 한 기술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인식에서 디자인은 패션디자인과 같은 시각적 아름다움만이 디자인의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려면 학창시절에서부터 미술의 활용적 가치로서 디자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발산'과 '융합적 사고'를 키우는 차원에서 디자인을 배워야 한다. 이에 대한 많은 방법이 있지만, 디자인처럼 그 실체를 명확히 만들면서,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디자인은 불가능할 것 같고, 애매한 상상에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체를 만드는 것이다. '창의적 발산'과 '융합적 사고'를 키우는 데 '디자인적 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제품이 아닌, 서비스 중심의 디자인사고가 필요하다. 가장 앞서가는 디자인으로 누구나 주저 없이 미국의 '애플'을 꼽는다. 단지 제품의 외관만이 아니라, 제품의 화면과 그 안의 콘텐츠 모두의 디자인을 최고라고 한다. 그러면, 삼성전자의 디자인이 애플보다 떨어지는 것일까? 애플만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있고, 삼성전자에는 없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디자인요소 하나하나를 따져본다면 결코 삼성전자의 디자인이 애플에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무엇일까?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제조 기업이다. 제조하는 제품에 최적화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애플은 제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그들이 디자인한 무형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모든 부품을 주문해, 조립하는 방식을 택한다.

삼성의 디자인은 제품을 위한 기술과도 같은 유형의 실체를 위한 역할을 하고 있고, 애플의 디자인은 제품을 사용하는 무형의 서비스 가치를 만드는 관계론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디자인의 대상이 유형의 제품인지, 무형의 서비스인지에 따라서 디자인의 가치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제는 제품을 잘 디자인하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고,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기반으로 교감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셋째, 전통과 정체성은 다르다. 저자는 올해 초에 구글의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디자인 빅데이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주제는 같은 문화의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들이 인식할 수 있는 우리만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중국, 일본의 컬러, 디자인, 푸드, 스타일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15세기부터 현재까지를 백 년 단위로 끊어서 분석을 시도했었다. 이런 연구해 본 결과 우리가 눈으로 동양의 3개 국가를 인식할 수 있는 차이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서양인들의 눈에는 단지 오리엔탈이라는 하나의 관점이지 한, 중, 일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고 싶은 말이 전통과 정체성을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상을 이끌려면 세계가 우리를 구분하고, 인정할 수 있는 막연한 전통이 아닌,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물질, 문화 등을 지속적으로 고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닌, 세계가 우리만의 것으로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만의 정체성은 전통의 '끊어지지 않는 지속가능성'과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이 동시에 확보돼야만 가능할 것이다. 만약 전통 중에서 특정한 소재를 고집하고, 옛 문화만을 중심으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지속가능성'과 '대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전통을 정체성과 같게 여긴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없고, 동양적인 전통만이 세계에 기억될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진보하며, 매 순간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런 전광석화처럼 변화하는 세상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끌어 가려면 저자가 주장하는 '디자인의 본질'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모든 역할과 가치가 그렇듯 디자인도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했다. 하지만, 디자인의 본질은 우리가 편협하게 인식하고 활용했을 뿐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을 이끌어 나가려면, 상업적 미술 활동만으로 디자인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관점으로 관찰하고, 새롭게 상상하고, 공감을 만들어 내는 디자인 본연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610060210225160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