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기고]20년 전의 기억과 PP의 현실 / 김도연(언론정보학부) 교수

정치든 경제든 주위에 보이는 상황은 온통 흐리고 암울하다. 오늘이 이러하니 내일 희망을 걸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꼭 20년 전 외환위기 때도 비슷했다. 당시 권력 주변의 부패로 나라 기강이 무너진 듯 허탈감을 느끼는 사이에 나라 곳간이 비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대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막 출범한 케이블TV는 자리를 잡기도 전에 타격을 받았고, 이후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배분하던 프로그램 사용료를 점점 줄여서 먹이사슬 끝에 있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침체됐다. 잊고 싶은 흑역사인 셈이다.

이제 유료방송 가입자가 단자 수 기준으로 3000만명에 육박할 만큼 유료방송은 겉으로 보기에 나름대로 토대를 구축했다. 그러나 외형에 걸맞은 내실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부정 평가의 근거로는 아직도 외국에 비해 수신료와 가입자당 매출액 수준이 낮고, 홈쇼핑채널 수수료와 광고매출액이 전체 매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형 구조를 든다. 무엇보다 유료방송 매출이 PP로 흘러가 다시 고급 콘텐츠의 제작과 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유료방송 PP는 크게 주요 MPP와 다수의 군소 단일 PP로 구성돼 있다. 최근 CJ 계열 채널의 부각과 종합편성 채널의 선전으로 유료방송 채널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런 가운데 PP업계의 존재감 있는 주요 PP와 오랜 기간 유료방송의 한 축을 차지해 온 군소 PP가 건실하게 자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들이 굳건히 성장할 수 있을 때 PP업계에도 아이디어가 작동하는 건강한 콘텐츠 생태계를 형성하게 되고, 유료방송의 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PP 프로그램 사용료 모수규제 철폐 계획`에 대해 PP업계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동안 플랫폼과 PP 간 협상 과정을 되돌아볼 때 군소 PP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결과가 매우 불리할 수 있다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험으로 알 수 있듯 사업자 간 협상에서 교섭력의 차이는 평등한 협상을 어렵게 한다. 오히려 엄혹한 시장 원리는 약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강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시장이 `동물의 왕국`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약육강식의 무질서가 판을 칠 수 있다.

정부 계획을 규제 완화로 봐야 할지도 의문이다. 유료방송에는 아직 철폐돼야 할 규제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규제 완화 흐름 속에서도 소비자와 `시장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프로그램 사용료 모수 규제도 협상 과정에서의 약자 고려에서 시작됐다. 모수 규제가 현재까지 콘텐츠 제작에 기여하는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음은 실증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이를 업계 자율로 맡기게 된다면 적어도 군소 PP에 다시 한 번 가혹한 현실을 맞게 할 수 있다. 정치 및 경제 혼란의 와중에 20년 전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문보기: http://www.etnews.com/20161207000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