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이교수의 세상만사] 글로벌 스크럼을 짜자 / 이길선(교양대학) 교수


일본의 한 마트. 손님이 텅 빈 식료품 진열대를 바라 보고 있다

최근 유럽의 여러 나라를 비롯하여 미국도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확진자만큼이나 시민들이 생필품이나 휴지를 사재기한다는 기사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재기는 '매점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고, 매점은 '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폭리를 얻기 위하여 물건을 몰아서 사들임'을 의미한다. 두 단어를 합쳐 해석하면 사재기는 '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폭리를 얻기 위하여 물건을 몰아서 사들이는 짓' 정도로 풀이될 성싶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재기는 미래 물건값과는 무관하게 그냥 닥치는대로 쟁여 놓는 것이다. 사전적 뜻풀이와 전제부터 다르다. 막연한 불안감에 사들이는 비이성적인 행위다.

미국의 한 마트. 고객이 카트에 생필품을 가득 실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평소 그렇게 찬양해마지 않았던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 코로나의 그림자가 어려있는 모든 나라가 비이성적인 행위에 당혹해하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딱지를 떼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37년 전 1983년 북한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적이 있었다.

겨우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어린 나이 때지만 서울에 북한이 침공한다는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학교에서 공산당 놈들은 머리에 뿔이 났고 입에서는 피가 흐르는 도깨비와 악마를 콜라보네이션한 형상이라고 배웠던 나로서는 비행기가 뜨고 포탄이 날라오는 전쟁이 실제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아 그때의 공포와 두려움은 아직도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눈깔 사탕 하나 마음대로 사지 못했던 시절이라 사재기는 고사하고 가게 유리창 너머 사탕에 침만 흘리곤 했는데, 커서 들으니 미그기가 남으로 넘어 왔던 당시 라면사재기기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과 메르스 바이러스가 유행했던 2015년에도 일부 사재기가 있었다. 기억 속 마지막 사재기였다.

이후 마트나 동네 사재기를 볼 수 없었고, 코로나19의 혼돈스러운 사태 속에서도 사재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굳이 얘기하자면 마스크 정도만 코로나 사태 초기에 반짝 사재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마트. 식료품이 진열대에 가득하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는 유엔 가입 나라들 중 거의 유일하게 사재기 무풍지대인 대한민국을 바라 보는 해석은 제각각이다. 메르스를 겪으면서 '물건 쟁여 놔봐야 하등 소용없다'는 경험의 발로일 수도, 우리만 잘 몰랐지 실은 우리의 시민의식은 이미 최고였다라는 풀이도,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에 뛰어난 의료기술과 시설로 인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른 의견도 있다. 바이러스나 전쟁 시 사재기는 국민이 공포감을 느낄 때 발생하는 것이지 그 나라의 국민성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확진자수는 감소 추세이고 한국 의료체계는 외부에서 바라 보기에 놀라울 수준이라 공포감이 느낄 정도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호주의 한 마트. 손님끼리 휴지를 둘러싸고 몸싸움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뉴저지에 사는 지인이 마트에서 마지막 남은 두루마리 휴지 4개를 사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가장으로서 역할을 한 거 같다며 SNS에 휴지를 꼭 껴안고 올린 사진을 보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웃프다'는 단어의 정의를 지인의 모습을 보며 알게 된,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었다. 소비로 나라를 지탱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물자가 가장 풍부한 미국에서조차 휴지 품귀라니!

왜 휴지일까?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시드니 대학의 소비자 전문가인 로한 밀러 박사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풍족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이것이 사람다운 삶의 최소한의 기준이라 생각해 집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동네 마트나 가게에는 아직 휴지가 넘처난다. 나라별 특성이든 개개인의 별난 성격 차이든, 사재기를 하느냐 안하느냐와 사재기 물건에 차이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재기는 나라끼리 연대할 수도 없고, 연대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전염병에 대한 국제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보의 연대, 물자의 연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한다.

며칠 전 덴마크 정부가 땅을 치고 후회한 일이 있었다. 한국이 확산 초기 덴마크에 진단시약키트를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이걸 거절한 것에 이제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쿠바는 유럽의 우한인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52명의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했다.

유발 하라리

현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예루살렘히브리대 유발 하라리 교수(44)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민족주의적 고립이 아닌 시민적 역량 강화와 지구적 연대를 추구하자"고 호소했다. 서로 등 대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도 직시하자. 미우나 고우나 지구촌은 운명공동체다.

우리가 방역을 잘했다고 자화자찬할 정도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대한민국 영토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제로이고 신규 발생자가 제로인들 외국에서 유입되는 한 도루묵이 될 공산이 크다. 대학 시절 데모할 때의 '스크럼'이 필요한 시기다. 공고한 연대로 코로나19에 대항하기 위한 '글로벌 스크럼'을 짜야 한다.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건 지구상에 인간뿐이다.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글. 이길선 국민대학교 교수. 많은 이들이 공동체적 가치를 갖고 함께 도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정치·사회·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 벤처회사에 투자 및 조언을 하고 있다. gslee@kookmin.ac.kr

 


원문보기: http://www.kdf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361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