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라이프칼럼-류성창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 융합교육의 허상 / 류성창(교육학과) 교수

최근 몇 년간 교육계에서 주목 받아온 언론보도 중에는 ‘기존 교과가 없어지고 완전히 융합된 교육과정이 등장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 모든 교과를 없애고 오로지 주제 중심 혹은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과정으로만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인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융합 교육과정에 대한 성급한 보도는 비단 한국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핀란드는 기존 교과를 폐지하는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되는가?’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기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기존 교과를 폐지하는 것으로 언급되는 핀란드 사례의 경우 약 3년여 전부터 핀란드 교육부 발표나 관계자들의 면담내용을 근거로 관련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보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교과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교과가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핀란드에서 실시하고자 했던 융합교육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모든 학년에서 반드시 1년에 한 번씩 2~3주 가량(기간은 학교 재량) 현상중심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 한국에서 프로젝트형 수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을 실시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나아가 향후에는 16세 이후의 학교급(한국의 경우 고등학교)에서 모든 수업을 이러한 현상중심 학습으로 하게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는 경우에도 중학교에 해당하는 15세까지는 기존의 교과 중심의 수업을 그대로 한다는 것이며, 교과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져 응용을 할 수 있는 연령이나 수준에 도달했을 때에만 융합형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도 융합교육을 둘러싼 세계적인 관심과 우려에 대답하듯 핀란드 교육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핀란드에서 교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라(No, Finland isn’t ditching traditional school subjects)’는 내용으로 대응보도를 하기도 했다.

교과(敎科)라는 것은 교육과정 상 영역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오랜 기간 활용되어 왔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각각 논리적으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수학, 철학, 음악 등의 교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철학적 논증이나, 인간이 세상에 대하여 인지하는 방식이 3가지 혹은 8~9가지 등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했던 인지심리학적인 이론들을 근거로 교과는 학문적으로 옹호되어 왔다.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탐구 영역을 구분해 기초학습을 실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발차기, 팔동작, 숨쉬기 등을 하나 씩 따로 더해가면서 배운 후에야 모든 동작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배우는 과정에서 교과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공통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중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이 교과 중심의 기초교육을 다지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융합형 교육에 대한 관심 속에 일각에서 아예 교과가 없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시기와 방식에 대한 명확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즉 프로젝트형 수업이나 융합교육의 경우 기초학습이 충분한 토대를 마련한 상황에서 실시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출처: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80821000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