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베 정권, 한·일관계 개선 호기 / 이원덕(국제학부)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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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원덕] 아베 신조(安倍晉三) 정권이 어제 출범했다. 예상대로 자민당 요직과 주요 각료에는 당내 파벌 간 안배를 넘어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측근 및 이념적 동지들이 고루 포진함으로써 명실공히 아베 친정 체제가 성립했다. 자민당 내 보수우파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당과 내각의 핵심 포스트에 등용됨으로써 향후 아베가 주도하게 될 총리 관저 중심의 정치 행보와 정책 방향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는 역대 총리 중에서 가장 우파적 성향이 농후한 정치인으로, 그의 성향이 정책에 여과 없이 표출된다면 대한해협의 파고는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베와 주요 각료의 이념 성향에도 불구하고 향후 아베 정권의 대한반도 정책이 초강경 일변도로 질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아베 정권은 의외로 유연한 자세와 탄력적인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小泉純一郞)에 의해 극단적으로 악화된 근린(近隣) 외교를 복원시켜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로서도 정치권과 재계, 국민 여론이 요구하는 근린 외교 관계의 복원을 마냥 무시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아베 정권이 안정적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9개월 후의 참의원 선거에서 선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아베는 근린 외교 개선 조치를 단행해 야당의 비판 예봉을 꺾음과 동시에 외교 업적을 과시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다. 더욱이 전후 일본 외교사에서 총리의 정치이념과는 무관하게 유연한 대외정책을 펼쳐왔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1950년대 하토야마 총리는 보수 이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경계하는 대소 정상화를 단행하였으며, 기시 총리는 표류하는 한.일 회담을 재개키 위해 전격적인 양보 정책을 취한 바 있다. 80년대 나카소네 총리는 한국과 중국의 반대로 야스쿠니 참배를 단념했다. 개인의 이념 구현보다는 국제정치적 상황과 국가 이익을 냉철하게 계산하는 현실주의에 충실한 노선을 답습한 것이 일본 보수외교의 전통이다.
정치인으로서 아베는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품성의 정치인으로 대중과도 알기 쉽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괴팍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좀처럼 꺾지 않았던 고이즈미와는 대조적이다. 우리의 관심사인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에 관해서 아베는 입장 표명을 삼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한편 당분간 참배를 자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관계 개선의 실마리는 일단 제공될 것이다. 아베는 정상회담 개최를 통한 근린외교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5년여 만에 찾아온 일본의 정권 교체는 우리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는 관계 개선의 호기가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봄부터 급속히 차가워진 관계 악화의 원인 제공자는 일본 측이었다. 독도.교과서.야스쿠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시작은 고이즈미 정권의 무신경한 선제 행위에서 비롯됐다. 물론 분쟁이 격화된 데는 한국 측의 과잉 대응도 한몫했다.
일본의 보수 인사들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포스트 노무현 정권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새겨보면 일본의 정권 교체야말로 한.일 관계를 바꿀 절호의 기회다. 관계 개선의 물꼬는 양국 정상이 조건 없이 만나 진솔하고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데서 트일 것이다. 아베 총리가 취임인사차 최초의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다면 관계 개선의 극적인 분위기 연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중.일 정상회담의 재개가 예상되며 이를 계기로 중.일 관계는 급속도로 풀려갈 것이다. 중.일 관계가 정상화되는 가운데 한.일 관계만 경색 상태를 유지한다면 우리의 외교적 옵션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아베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우리는 열린 마음과 유연한 자세로 새로운 대일 관계를 탐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정치학 출처 : [중앙일보 2006-09-27 0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