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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인사실험` 돌풍 몰고 온 박맹우 울산시장 / 동문(행정81졸)

“지방의 한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일이 이처럼 빠르게 시대적 흐름이 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국민들이 공직사회를 어떻게 보고, 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대변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어요.”

지난 1월 공무원 신분보장 규정만 믿고 시민의 세금으로 받는 봉급을 축내며 일은 뒷전인 이른바 ‘철밥통 깨기’ 인사실험에 나선 박맹우 울산시장. 그의 목소리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공무원 신분보장 규정이란 범죄로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파면 등의 사유가 아니면 공무원을 퇴출시킬 수 없도록 돼 있는 것을 말한다.

법의 보호막에 안주하는 공무원을 시민이 시장에게 준 인사권으로 퇴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서울·제주 등 전국 30여 자치단체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가에도 방법은 다르지만 철밥통 깨기에 동참하는 기류가 형성되는 등 불과 50여일만에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박시장은 “그러나 당사자와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시정지원단에 발령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소리를 하루빨리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철밥통 깨기 인사실험에 나선 지 두 달이 다 돼 갑니다. 자체 평가를 한다면.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고 시행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긴 이릅니다. 하지만 지자체.정부부처.대학.기업체 등 100개가 넘는 기관.단체가 자문을 구해 오고 수십 곳에서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시행에 들어간 걸로 미뤄 보면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습니다. 시청 조직 내부에선 모든 직원이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긴장하는 모습입니다. 업무처리 속도나 충실도,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진 걸 피부로 느낄 정도입니다. 시민들이 '공무원 조직이 스스로 부적격자를 선정해 분발과 자성의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고들 하더군요."

-철밥통 깨기 인사실험에 나선 계기는.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난처했던 점이 인사 문제였어요. 인사철마다 '이 사람만은 못 받겠다. 차라리 자리를 비워 두는 게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된다'며 실.국장들이 통사정을 해요. 그런 대상자를 억지로 떠맡겨 놓고 나면 업무 성과가 부진해도 실.국장들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요. 오래전부터 조직 내 일 안 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을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끌어안아 온 관행을 언제까지고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해 왔고요. 고심 끝에 빈자리가 생기더라도 그런 사람은 현직에서 배제시켜 별도로 관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인사실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남아도는 인력을 정리.감축하기 위한 구조조정 수단으로 오해하는 분도 있던데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첫째 목표는 공직사회에 철밥통 의식을 깨부수고 긴장감을 불어넣자는 것이고, 둘째 목표는 변화에 적응을 거부하고 무사안일에 젖은 공무원들에게 자성과 분발의 계기를 만들어 주자는 겁니다."

-어떻게 준비했나요.

"지난해 7월 민선 4기 출범과 동시에 외국 자료를 모으는 등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준비에 들어갔고, 확정된 방안은 시행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 미리 발표했습니다. 전 직원에게 미리 자성과 분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대상인가요.

"시민을 위해 봉사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사람, 조직의 일하는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사람입니다. 공무원 신분 보장 원칙은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소신껏 열심히 일하라는 취지인데 이를 방패 삼아 '일 안 한다고 쫓아낼 근거는 없다'는 식으로 배짱부려도 좋다는 걸로 착각해서는 곤란하지요."

-어떤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했습니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우선 실.국장이 자기 부서의 과장급인 4급부터 주요 실무자인 6급까지 함께 일할 사람을 골라 소신껏 일하게 하는 '실.국장 추천제'를 만들었습니다. 실.국장이 6급을 추천할 때는 그 사람을 지휘해 온 5급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도록 해 최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5급에 대해서는 4급과 협의하도록 했고요.

이런 방식으로 세 차례에 걸쳐 3배수 추천을 하도록 하고 끝까지 제외된 직원 4명(5급 1명, 6급 3명)은 별도로 '시정지원단'에 발령, 교통량 조사나 환경미화 작업 등 단순 잡역을 하면서 자성과 분발의 계기로 삼도록 했습니다."

-항의.반발 등 부작용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수긍하지 않고 해명을 요구하는 등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새 인사제도의 취지와 자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어떤지 설명을 듣고는 대부분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분발을 다짐했습니다. 요즈음은 주변에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어요."

-줄세우기 인사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노조가 그런 주장을 했다지요. 하지만 그것은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의심한 때문이지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닌 줄 압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연공서열.줄서기.온정주의 인사 관행에 대한 혁신으로 보는 게 온당하지 않습니까. 울산시가 시행하고 있는 실.국장 추천제를 놓고 봅시다. 정실에 흔들려 퇴출 대상인 무능한 공무원을 되레 추천하고 유능한 공무원을 추천에서 배제시켜 보세요. 그것은 곧 자기 부서에 무능한 공무원만 남기고 유능한 공무원을 쫓아내는 결과를 가져와요. 자연히 부서 업무 효율이 떨어져 실.국장 자신이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이를 계기로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시정지원단 제도가 일종의 벌(罰)이라면 이번 인사혁신책의 양대 축이면서 주목받지 못한 '희망부서 전보 신청제'는 상(賞)이라 볼 수 있는데 이를 더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유능한 직원은 소속 부서 실.국장이 놔주지 않으려해도 자신이 희망하는 부서로 옮기는 것을 보장하는 거죠. 능력과 실적에 따라 승진 연한에 구애받지 않고 발탁시키는 방안도 추진할 생각입니다."

-시정자문단에 발령 난 사람들의 하루는.

"4명 가운데 한 명은 별도로 징계를 받아 정직 중이고 나머지 3명은 생활쓰레기 매립, 시가지 덩굴식물 심기, 태화들 수변공원 조성지 철거 작업에 한 명씩 투입되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8시30분까지 사무실로 출근해 담당 후배 직원들의 작업 지시를 받고 현장으로 나가 퇴근시간까지 일한 뒤 복귀, 하루 동안 한 일을 작업일지에 적어 보고하고 승인받으면 귀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

"1년간의 업무 실적과 직무 수행 태도를 평가, 우수하면 복직시켜 줄 계획입니다. 그러나 '미흡' 판정을 받으면 다시 1년간 현장근무를 한 뒤 재평가를 받고, 그래도 '미흡' 판정을 받으면 직위해제되고 3개월간 과제를 받습니다. 여기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직권면직시킬 예정입니다."

-일부에서는 포퓰리즘적 실험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안정적인 직장을 고른다고 공무원 시험(행정고시)를 거쳐 20년간 임명직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날이 달라지는 변화의 물결을 공직사회만 거부한 채 철밥통을 꿰차고 있다는 건 고용주인 시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직원 개인과 가족에게는 인생을 좌우할 만큼 민감한 사안이어서 사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치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합니다. 특히 무리하거나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투명하고 객관적인 선정 과정, 퇴출 기준 마련이 중요합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저도 시민의 손에 의해 퇴출될 겁니다."

-시 공무원들에게 당부할 말은.

"시정지원단에 발령 난 직원이나 그 가족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를 유독 우리 시가 앞장서 시행한 것에 대해 원망과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장의 입장에서 일 안 하는 공무원에게 봉급 주기 싫다는 시민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시장으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대상자들은 분발의 계기로 삼아 당당히 복귀하기를 기대합니다. 나머지 공무원도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시민을 위해 헌신 봉사해 주기 바랍니다."

 


*** 박맹우 울산시장은

박맹우 시장은 1950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등학교와 국민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에 나섰다. 내무부 종합상황실장, 경남도 기획관, 울산광역시 내무국장 등을 거쳐 3.4대 민선 울산광역시장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공장이 밀집한 울산을 환경도시(에코폴리스)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지 3년 만인 2005년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던 태화강 물을 깨끗한 물로 바꿔 놓았다. 태화강에서는 해마다 전국수영대회가 열린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울산국립대 유치에 성공해 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았다. '울산의 힘 '뿌리와 비전''등 3권의 저서가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원문보기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3/18/2898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