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대통령의 힘과 대선주자들의 약속 / 김병준(행정정책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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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천하장사는 힘이 세다. 하지만 그 힘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한두 명을 제압하는 것이야 일도 아니겠지만 산을 옮기고 강을 만드는 일에는 여느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다시 물어보자. 대통령이란 ‘천하장사’가 산을 옮기고 강을 만들 그런 힘이 있는가? 국가의 세입구조와 재정구조를 바꾸고, 산업구조와 인력양성체계를 개편하고,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동북아 지역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힘 말이다. 한때는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시장도 시민사회도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국가권력이 천하를 호령했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었다. “당신은 반도체, 당신은 자동차” 하며 산업구조를 조정했고, ‘새 마음 운동’이다 뭐다 하며 국민의 정신세계까지 개조하고자 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다.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글로벌 사회의 영향력이 커진 가운데 대통령은 더 이상 예전의 대통령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세 대통령의 죽음과 몰락이 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주었다. 단적으로 법률 하나 제ㆍ개정하는 데 평균 35개월이 걸린다.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새삼스럽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소위 대선주자들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생각 없이 약속하고 슬로건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한다. 마치 대통령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 약속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 지키지 못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되고자 뛰는 대선주자야 오죽하겠나. 시장과 시민사회 등에 대한 대통령의 상대적 힘과 자원동원력을 면밀히 살펴야 하고,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과 전략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당장에 ‘국민성장’ 등 야당 주자들이 내놓고 있는 성장 슬로건들만 봐도 그렇다. 늘 분배를 강조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성장을 앞세우고 있는데,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없다. 고민을 깊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입장, 즉 분배를 강조하던 입장에 대한 성찰이 없어 더욱 그렇게 보인다. 새로운 비전과 전략은 과거의 그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참회’를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법이다. 즉 무엇을 잘못 짚었으니 이후로는 그러지 않고 이렇게 하겠다는 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새로운 약속 내지는 슬로건의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저 단어 한두 개만 바뀌었을 뿐 과거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반성도 참회도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큰 문제이다. 표를 얻으려고 국민을 현혹하고 속인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된 고민을 하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내가 힘이 부족하면 남의 힘을 빌려서 일을 성사시키겠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대통령 혼자 어떻게 하겠다고 하기보다는 시장과 공동체, 심지어는 야당과 함께 어떻게 해 보겠다고 할 수도 있고, 이들 스스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 무엇을 새롭게 약속하건 그 출발은 대통령의 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에 기반을 둔 약속과 슬로건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는 일이다. 혹시 아나?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는 길이 열릴지. 김병준 국민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opinion@etoday.co.kr
원문보기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99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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