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시온의 소리] ‘반·미·고·잘’/ 이의용(교양대학) 교수
노인 스피치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노인에게 스피치 학원이라니…. 노인이 되면 말을 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이가 없다. 그런데 스피치 학원에서 말할 기회를 주니 얼마나 좋은가. 3분 스피치 후 피드백으로 코칭을 해주는데, 서로 먼저 발표를 하려고 경쟁을 벌인다고 한다. ‘손주에게 옛날이야기 해주는 법’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법’도 가르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가을에는 가족들을 초청해 발표회도 가진다고 한다. 여러 모로 좋은 사업인 것 같다. 
 
말하기에 관심이 늘어나서일까, 아니면 말하기에 부족함을 느껴서일까. 요즘 부쩍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해온다. 말을 잘한다는 건 꼭 해야 할 말을 상대방이 가장 필요로 할 때 하는 게 아닐까. 바꿔 말하면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그 말이 필요한 순간에 그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말을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미·고·잘’이라는 처방을 내려준다. “반갑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잘하셨습니다”의 약자다. 이 네 마디를 적시에 적절히 사용하다보면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첫째, “반갑습니다.” 논산의 어느 마을버스 운전기사는 500명 승객의 이름을 다 외우고, 타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나눈다. 군대나 학교에서는 아랫사람이 먼저 인사를 한다. 그래서 먼저 인사하는 걸 꺼리게 된 건 아닐까. 뜻밖에도 인사를 나누지 않고 사는 이들이 많다.

길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심지어 교실에서조차. 인사는 자존심 대결이 아니라 소통의 시작이다. 인사는 타이밍을 놓치면 그다음 말 걸기가 참 쑥스러워진다.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먼저 하면 된다. 상대방 이름도 불러주고 뭔가 좋은 이야기도 한마디를 붙여주면 좋은 인사가 된다. “반갑습니다. 김하나씨, 오늘 머리 하셨네요?” 이런 식이다.  

둘째, “미안합니다.” 사과는 ‘때’가 중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사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것이 쌓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된다. 사과는 이미 베어 먹은 입 안의 것을 기꺼이 내뱉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러자면 사과의 내용은 상대방이 원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미안한 정도에 따라 사과의 수준도 유감, 책임, 보상, 뉘우침, 용서의 요청 단계로 높아져야 한다. 또 “미안합니다”보다는 “발을 밟아서 미안합니다”처럼 구체적이어야 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같은 사과를 반복하는 것은 최악이다.

셋째, “고맙습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 못하면, 다시는 그 사람에게 베풀기 꺼려진다. “다시 해주나 봐라. 고마운 줄도 몰라!” 이런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며 사는가. 고마울 때는 때를 놓치지 말고 표현을 해야 한다. 무엇이 구체적으로 고마운지도 함께. 내게 벌어지는 숱한 고마운 일들을 작은 노트에 제목만이라도 기록해보자. 그리고 감사하자.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넷째, “잘했습니다!” 경쟁하고 비교하는 마음에서는 칭찬이나 인정의 말 대신 비판과 빈정거림만 나온다. 다른 사람이 이룬 크고 작은 성과를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칭찬이나 격려는 “참 잘했어요”라는 스탬프처럼 사람을 신나게 해준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잘 관찰해보자. 그리고 엄지를 펴 보이며 “잘했습니다!” 인정하고 칭찬해주자.  

그러나 조심할 것도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어떤 칭찬은 고래를 짜증나게도 한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상투적인 칭찬, 사람을 다루려고 하는 칭찬은 반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칭찬은 공개적으로 하지만, 꾸중은 비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뜻밖에 하는 칭찬, 물질적 보상이 따르는 칭찬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반·미·고·잘’ 이런 말은 아무리 더듬거리며 고백해도 아름답다. 이 가운데 ‘미안합니다(회개)’와 ‘고맙습니다(감사)’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말이다. 이런 말을 자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진정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닐까.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18)

이의용(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95240&code=2311141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