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자산은 선택의 문제 아니라 공동체의 의무"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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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심리적 좌절이 일상이고,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진다. 이른바 촛불 정부가 들어서도, 사회적 이동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와 함께 사회의 활력도 떨어진다. 침체되는 사회에서 불안한 삶을 버텨야 하는 것이 진정 우리의 일상인가? 대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맹자의 가르침부터 들어보자. "안정적인 자산이 없으면,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 안정된 마음이 없으니, 방종하고 간사하며 거만하게 되지 않던가."(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邪侈 無不爲已) 이 말에는 경제 문제가 개인의 안정과 사회의 유지와 번영의 근간이 된다는 뛰어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라도, 국가가 개인에게 안정적인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해야하는 것 아닐까. 이는 인류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역사에서 반복된 토지 개혁이다. 토지 개혁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느냐 그렇지 않냐에 따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되고 나아가 번영하는지 활력을 잃고 쇠퇴하는지 갈렸다. 사람에게는 '천부 기본 자산권' 있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이호선 지음)는 추상적 담론으로서 정의가 아니라 현실 방법론으로서 정의론을 구성하고자 해서 주목을 끈다. 이호선 저자는 이 책에서 토지 개혁의 역사를 공동체 유지를 위해 '기초 자산'(생애 기반 자산)을 마련하고자 했던 일환으로 읽어낸다.
"각종 토지 개혁을 둘러싼 동서양의 역사적 경험은 개인에 대한 일정한 자산적 토대가 공동체의 정상적 유지와 번영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439쪽)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으로 공화정은 두터운 중산층 양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산을 독자적으로 보유하지 못한 이는 공공 정신을 발휘하기 어렵고, 이런 시민들로 구성된 공화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고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헌법이 이야기하는 민주공화정의 지속성은 자산과 생업에서의 자조적인 시민들을 일차로 만들어내는 데 달려 있다"(49쪽)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대에 필요한 권리로서 '천부 기본 자산권'을 주장한다. 여기서 저자가 펼치는 전략은 '사회 계약론의 업그레이드'다. 사회계약론은 그저 추상적 담론이 아니다. 사회 계약은 법학, 정치학, 경제학, 윤리학 등을 통해 사회를 읽고 정의하는 주요한 잣대가 된다. 무엇보다 사회의 큰 틀을 규정하는 헌법과 헌정 체제가 바로 사회계약론에 근거한다. 사회계약론은 현실을 규율하는 힘이 있다. 또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반이고, 권리와 의무를 재조명하거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근대 사회계약이 꿈꾸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시장에서의 분업과 교환이 경제적 생존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외와 열세를 고착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면, 이는 사회계약의 본질에 반할 뿐 아니라 당초 사회계약을 주창했던 사람들의 의도와도 배치되는 것이다."(45쪽)
그래서 저자는 오늘날 사회에 필요한 사회계약론을 업그레이드한다. 즉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권리인 천부물권(natrual property right)을 밝힌다.
'기초 자산'은 공동체의 안전망이자 사회의 활력 낳아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무리 '노오력' 해도 '갓물주'(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과 같은 건물주)에게 성과를 빼앗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직장인들은 나쁜 근로조건과 직장 내 괴롭힘‧갑질 등을 견뎌야만 한다. 소득을 얻어도 월세와 보증금 이자로 소진하며 사회적 이동은커녕 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도무지 이런 절망적인 세상에서는 삶의 전망을 가질 수 없다.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이동성, 사회적 기대 가능성, 사회적 성취가 보장되어야 한다. 저자는 여기서 이를 가능케 하는 실질적 수단이 '자산'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부의 축적에 있어 급여 소득보다 자산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산 불평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불평등이 세습'되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전혀 다른 삶의 전망을 갖게 되는 것은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사회 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수단의 확보가 필요하다. 바로 그 근본적 수단의 하나로서 저자가 제안하는 것이 생애 기반 자산이다.
"생애 기반 자산(기초 자산)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계층과 세대간 갈등의 원인이 되는 불평등과 빈곤, 이로 인한 심리적 격차와 좌절, 소외, 그리고 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결혼 회피, 저출산, 높은 자살율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자 사회적 활력을 지속시키는 구체적 정의이다."(412쪽)
기초 자산은 장점이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안에 쫓기지 않게 안정을 제공하고, 장래 설계의 토대가 되어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개선하며, 빈곤의 대물림을 막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 또 공공 의식을 지닌 시민을 육성하고, 사회 통합을 유도하며, 사회의 활력을 낳는다. 이렇듯 기초 자산은 개인의 안전망이며 동시에 공동체의 안전망이기도 하다. 나아가 저자는 기초 자산이 정책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의무라고 말한다.
정의는 공동체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조건 그렇다고 저자가 기초 자산이 사회의 이동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산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공공정책이 사회적 활력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431쪽)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초 자산의 의의를 다음처럼 강조한다.
"국민들 각자가 적어도 일정한 기초적인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산과 유리되어 삶의 버팀목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인가 하는 점은 한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의 확립여부, 그 개인이 속한 세대와, 그 세대들이 모인 지역 공동체, 나아가 국가 공동체의 활력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가 아닐 수 없다."(440~441쪽)
한편 이 책은 미국도 자산을 분배한 역사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한다. 1862년 공공토지공여법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자산을 나누어 주었다. 무려 160만 명의 사람들이 미국 전체 토지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토지를 공여받았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국 사회의 활력과 번영은 자산 배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정의는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조건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는 정의론의 전통을 계승해 오늘날 현실에서 정의를 증진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무척 크다. 그렇지만 앞으로 논의해야 할 내용이 많다. 이 책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기초 자산에 대한 논의가 더욱 발전된다면 좋겠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3877&CMPT_CD=SEAR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