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성희롱이란 말이 처음 어떻게 쓰였는지 아시나요 / 한희정(교양대학) 교수

서지현 검사의 검찰 조직내 성희롱(sexual harassment) 폭로 이후 “Me First”, “With Me”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이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필자는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 방송(1월 29일 Jtbc 뉴스룸)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시청하면서 또 그 이 후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느낀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 사용되는 ‘성희롱’은 성폭력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명명이다. 하지만 성희롱은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의 번역어로서 추행과 강간의 개념을 포함한다. 즉,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의하면 “업무 관련자 사이에 직위를 이용하여 발생하는 모든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서 검사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성폭력을 성폭행(강간), 성추행(강제행위), 성희롱(언어적 성폭력) 등으로 구분했다.  

우리나라에 ‘섹슈얼 허래스먼트’라는 외래어가 들어온 것은 1991년 10월 미국 토머스 대법원장의 인사 청문회의 외신기사를 통해서였다. 초기에는 “성적 괴롭힘” 등으로 번역되다가 1993년 일명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직장이나 학교 내 권력관계 하에서의 성폭력을 성희롱으로 칭하게 되었다.

당시 여성계는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로 남성들의 소소한 언어적 성적 희롱까지 법적 제재가 가능하도록 문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섹슈얼 허래스먼트를 ‘성희롱’으로 번역, 정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성희롱’은 성추행보다 경미한 성적 언동이라는 오해를 낳게 되었다. 

현재 성희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두 가지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성희롱 결정에 대해 가해자가 행정소송을 통해 다투는 것이다. 한편, 성희롱 행위자를 형사 처벌하려면 성추행, 성폭력의 구성 요건을 입증해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성폭력 범죄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 한, 성희롱 행위자는 형사 처분이 되지 않는다. 다만, 대상이 노인이나 아동인 경우에는 성희롱 행위자에 대해 형사처분이 가능하다. 따라서 성희롱은 단순한 언어적 성적 희롱만을 의미할 수 없다.  

둘째, 언론이 성폭력 피해자를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능동적 주체로 표현할 때, 성희롱 고발과 시정 요구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된다. 방송 중 서검사는 차분했지만, 시종 상대방이나 카메라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쉽지 않은 인터뷰였고 떠올리기 싫었던 그런 경험이었기에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폭력의 피해자는 사건 후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피해자’의 모습으로 남아야 할까. 한국 사회가 피해자다움, 피해자스러움의 전형을 강요하는지도 모른다. 성적으로 침해당한 참담한 모습의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경찰과 검찰 조사, 나아가 재판에 임하지 않으면 그녀(그)를 성폭력의 피해자로 보지 않고 피해 사실을 의심받아야 하는 2차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수많은 성폭력 생존자의 증언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폭력을 당했다고 남은 생을 “피해자”로 남아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생존자’로 명명해야 한다.  

이번 성희롱 폭로가 사회적 이슈가 된 이유로 피해자가 유명인(셀럽)과 전문직이라는 지적도 약자의 피해를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점에서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그동안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일반 시민 피해자의 아픈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의 문단 원로 성희롱 폭로를 한 작가들과 한샘과 삼성르노자동차의 성희롱 생존자들은 절절하게 호소했었다. 이들 생존자의 고백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앞으로 미디어가 평범한 성희롱 생존자들의 애절한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면 직장내성희롱의 피해 구제와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성폭력 피해를 밝힐 경우 피해가 사실이어도 명예훼손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형법의 개정도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성범죄의 감소를 위해 시급히 요구된다. 이제 공은 20대 국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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