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글로벌포커스] 시장화 열망 식어 가는 북한 엘리트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2012년 이후 북한에서 나왔던 경제 관련 소식들은 거의 모두 긍정적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조용하지만 힘 있게 소련식 중앙계획경제의 유산을 청산하면서 시장경제를 촉진하고 있었다. 북한은 확실히 1980년대 초의 중국을 보았는데, 국내 정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개방을 모방하지 않았지만 경제를 살리는 시장화 개혁은 흉내 내고 있었다. 시장화는 어디서든지 경제 성장을 불러오는데,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2~2017년 북한은 4~6%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소식들은 사뭇 다르다. 북한 엘리트 계층에서 시장화에 대한 열망이 식어 가는 조짐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경향이다.

2012~2016년 매년 포전담당제, 경제특구제, 기업관리책임제 등의 경제 개혁을 실시했던 북한 정권은 2016년 말 이후 경제·경영 부문에서 새로운 개혁 조치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김정일 시대부터 보지 못해 왔던 돈주와 대규모 개인 장사에 대한 단속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아도 재개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2012년에 도입한 포전담당제 실시도 최근에 둔화됐다는 이야기가 많다. 포전담당제 덕분에 북한의 식량 상황이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좋아졌지만, 북한은 1980년대 초 중국만큼 농업 개혁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올해 들어 식량난이 다시 생길 수 있다는 조짐도 없지 않다.

2000년대 초부터 경제 개혁을 옹호했으며, 김정은 시대가 시작했을 때부터 경제를 관리해 온 총리 박봉주는 며칠 전 김재룡으로 교체됐다. 군수공업 지역인 자강도의 책임자로 지냈던 김재룡의 배경을 감안하면 그는 거의 확실히 시장화보다 국가 통제와 사상 동원을 바탕으로 하는 구식 경제모델을 선호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며칠 전 김정은의 연설도 자력 갱생 등을 많이 강조했다. 이 증거들을 고려하면, 지난 몇 년 동안 대체로 잘 진행된 북한의 `조용한 시장화` 정책은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뒤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정책 변화를 초래한 기본 이유는 대북제재다. 2016년 이후 많이 엄격해진 대북제재는 북한에 경제위기를 불러오진 못했지만, 경제 성장을 마비시켰고 엘리트 계층에서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일으켰다. 이 경향은 북한 측이 예측하지 못했던 `하노이 결렬` 이후 더욱 강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시, 통제, 동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매우 커졌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개혁하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도, 이웃 나라 국민 입장에서도 개혁을 하지 않는 것은 보다 더 위험하다.

북한이 경제 개혁을 완전히 포기한다면 잘 성장할 수 없고, 이웃 나라들과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남북한 간 일인당 소득 격차는 1대25 수준인데, 국경을 접한 나라들 중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격차는 앞으로 계속 커질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시한폭탄이다.

당연히 북한이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아수라장이 될 경우 제일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북한 엘리트 계층이다. 그러나 북한 `혁명`이나 `봉기`와 같은 사건은 남한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에도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반도에서 제일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북한 혁명`보다 북한의 `단계적 진화`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 상황 개선과 생활 수준 향상을 이뤄야만 장기적으로 내부 안정을 유지하고 진화의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감시·통제를 완화하지 않더라도 경제의 시장화를 촉진하는 것뿐이다.

덩샤오핑은 이 사실을 잘 알았다.

 

 1989년 톈안먼 사건 당시 많은 중공 간부는 민주화시위에 겁을 먹고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톈안먼 운동을 탱크로 진압한 다음,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은 계속된다고 선언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더욱 중요하고, 개혁을 가속화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는 이 전례를 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출처: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9&no=233740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