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대구지하철 참사와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 관념 / 김환석(사회)교수

2003년 3월 19일(수) - 한겨레신문 -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가 발생한 지 한달이 되었다. 정부는 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시설 복구 이외에, 행정자치부 산하에 재난방지시스템기획단을 만들어 재난관리청(가칭)의 신설과 재난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의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안전관리기본법(가칭)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나는 이번 참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성관념이 지닌 편향과 취약성이라 지적하고 싶다. 우리 대부분은 과학기술을 문명의 이기로만 알고 혜택을 누릴 생각만 하지, 그것이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알고싶어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박정희 정부의 ‘과학기술입국’으로부터 현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 슬로건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은 우리가 총력을 다해 빨리 배우고 개발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그것이 우리의 삶에 들어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실제로 어떤 구실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편향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과학기술’이란 용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특정한 용법이다. 과학기술자나 과학기술 정책당국에게 물어보라. 지하철은 ‘과학기술’인가 아마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뜻 답을 못할 것이다. 그건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연구와 개발’(아르 앤 디) 곧 새로운 과학기술적 지식과 도구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그 생산자인 과학기술자의 독점적 영역으로 간주되며,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정책으로 국한되고 만다. 곧 과학기술의 소비과정은 대체로 무시되며 과학기술적 산물의 궁극적 소비자인 일반 국민은 정책에서 배제된다.

과학기술의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예컨대 과학기술의 생산을 지원하는 부처와 과학기술이 초래하는 결과를 뒤처리하는 부처들 사이의 분리로 제도화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학문과 문화에서도 이른바 이공계와 인문계의 절름발이 ‘두 문화’로 고착화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생산과 소비가 이렇듯 분리되면, 생산자는 소비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소비자는 문제의 원인을 모르는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 사회의 큰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난방지시스템은 과학기술의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체화되어야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은 결국 어디선가 과학기술자가 생산하여 일반시민이 소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기 때문이다.

김환석/국민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