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횡설수설] 정성진/파업의 한계 (총장)


2003년 7월 7일 - 동아 -


노동조합은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나마 자유로운 활동을 공인받기 시작한 것은 1824년 무렵이라고 하니 그 역사는 200년이 아직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89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47명의 부두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한 것이 최초의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 부산에서 일어난 부두노조의 임금인하 반대 파업과 부산 조선방직 근로자의 파업이 유명하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계가 주도하던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와, 이를 타도하기 위해 결성된 대한독립촉성 노동총연맹(대한노총)의 이념적 대립이 극심하였으므로 우리나라의 노조운동은 출범 초부터 민족적, 이념적 또는 정치적 색채를 띤 일면이 있었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듯이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또는 그 연합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파업을 포함한 노조의 쟁의 행위도 당연히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이나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그 존립 목적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만큼 파업 자체가 제약과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법원의 판례도 이른바 정치 파업, 경영간섭 목적의 파업, 동정 파업 등에 대해 이러한 원칙에 따라 대부분 불법파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전교조의 연가투쟁이나 조흥은행 노조 및 철도노조의 파업은 법이 정한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절차상의 흠 이외에 파업 자체가 노조활동의 목적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이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파업의 명분으로 내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나 은행 통합 이후 한시적 독립경영 보장 또는 철도구조 개혁법안 입법 중단과 같은 노조의 요구사항들은 어느 모로 보나 근로조건이나 근로자의 지위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적, 행정적 사안이거나 경영상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선진국의 입법 정책도 금지와 탄압에서 방임의 과정을 거쳐 법적 보호라는 단계를 거쳤으며 지금은 오히려 노조의 권한 남용에 대한 규제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국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노조의 집단행동이 근로자의 생존이나 복지를 위한 순수한 목적을 벗어날 때, 먼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노조 지도자들은 각별히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정성진 객원논설위원·국민대 총장 sjchung@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