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화요포럼-시급한 국가 의제는 무엇인가 / 배규한(사회)교수
[매일신문 2004-07-20 11:51]

얼마 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30여명이 모여 브레인 스토밍(brain storming: 상호간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하여 추구하는 답을 모색해 가는 미래연구의 한 기법)을 한 적이 있다.
주제는 ‘지금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national agenda)는 무엇인가?’였다.

경기회복, 교육개혁, 세제혁신, 기술개발, 국가안보 등 많은 의제들이 제안되었지만, 필자는 그 무엇보다도 ‘사회적 신뢰 구축’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여 많은 공감을 얻었다.

경제문제가 심각하고 정치혼란이 큰 이 때, 당장 급한 것 같지도 않은 사회적 신뢰가 과연 그토록 중요한가? 신뢰는 사회의 벼릿줄과 같다.

사회는 사람들 간의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며,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그 때는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라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장소가 되고 만다.

이처럼 중요한 ‘신뢰’가 최근 한국사회에서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어찌 ‘국가 의제’가 아니겠는가? 과거에는 어린이들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거짓말의 본을 보이고 있다.

온갖 탈법과 편법으로 돈을 벌고 자녀를 유학 보내는가 하면 일가족 도둑 팀도 등장한다.

주차위반 스티커를 발부하거나 시험부정행위 학생을 적발하면 열이면 열 모두가 ‘억울하다’고 하소연 한다.

다들 하는데 자기는 조금 실수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신뢰를 바탕으로 발급되는 것인데 신용불량자가 전체 성인의 20%에 육박하고 있으니 이런 불신사회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일반대중은 그렇다 치더라도 법과 규범을 창출하고 수범을 통해 정착시켜 나가야 할 엘리트 집단에 대한 신뢰도 사라졌다.

요즘 누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의 말을 믿는가? 으레 당리당략적 또는 책임회피용 발언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양대 기둥은 정부와 언론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들이 서로 왜곡이니 조작이니 하며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으니, 세상에 국민은 누굴 믿어야 할꼬? 19세기 이후 산업화의 물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본’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물적 토대보다는 행위주체인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하여 ‘인적 자본’을 강조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가 되면서 이제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보사회에서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물류 유통뿐 아니라 상호작용이나 조직의 운용까지도 모두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나 시장에서의 합리적 행동만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이론은 어느새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이 되었다.

미래 선진화의 핵심은 도덕, 규범, 협동, 상부상조 등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바로 구성들 간의 신뢰이다.

후쿠야먀(Francis Fukuyama)는 9년 전에 벌써 “공통의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믿고 존중하며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만드는” 신뢰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살리는 핵심요소라고 갈파했다.

사회적 신뢰는 선진국 진입의 전제조건이며, 그 수준이 곧 선진국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9년 전 그의 주장이 새삼 굉음이 되어 머리를 울리는 것은 최근 한국사회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 때문이다.

신뢰구축이 선진국 진입의 관건이라면, 우리가 소득 1만달러 수준에서 근 10년을 답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회적 신뢰가 허약하기 때문인가? 신뢰가 무너지고 사회가 해체된다는 것은 결국 나라가 망하다는 뜻인데, 나라가 어떻게 망한단 말인가?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망해 없어진 나라는 수없이 많고, 그들 중 다수가 외부 침략보다는 내부의 부패와 타락에 의해 서서히 몰락해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적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온갖 개혁이나 미래설계보다 더 시급한 ‘국가 의제’가 아니겠는가?


배규한 국민대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