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親勞 운동장' 더 기울게 할 ILO협약 비준 / 류재우(경제학과) 교수 | |||
---|---|---|---|
노조는 이미 지배권력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하고 류재우 <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과 함께 노동관계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도 강력한 노동조합의 힘을 더 키우는 방향이어서 산업 평화를 흔들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고용이 안정되고 보수가 높은 1차(primary) 시장과 그렇지 않은 2차 시장으로 양분된 상황을 가리킨다. 대략적으로 말해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이 전자에,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 후자에 속한다. 흔히 이중구조 문제를 말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가 그 주범이라고 주장하며, 대기업 영업 규제나 협력이익공유제 등으로 문제를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실상 이중구조의 주원인은 대기업 및 공공부문을 장악하고 특별대우를 챙기는 노조의 존재다. 우리나라 노조는 주로 기업별 노조다. 그러다 보니 경쟁력과 지급능력이 있는 대기업, 정부의 면허나 진입 규제로 독과점적 지위가 확보된 공기업, 금융부문 등의 노조가 노동공급 독점력을 이용해 고용 안정과 높은 임금을 챙기고 비용은 비노조 부문으로 전가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렇게 생긴 격차가 이중구조다.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 격차는 내부자-외부자(insiders-outsiders) 이론으로 설명된다. 요즘말로 ‘인싸(인사이더)’인 노조원은 고용이 줄더라도 노동독점권을 이용해 임금을 올린다. 이들 간에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봤듯 고용세습도 다반사다. 강한 보호막이 쳐진 ‘인싸’에 끼지 못한 ‘아싸(아웃사이더)’들은 2차 시장으로 밀려나거나 실업자가 된다. ‘인싸’들이 사측 양보를 받아낼 때 쓰는 무기는 파업이다. 핵심 기간산업이나 공공성이 큰 산업에서의 파업은 기업에 직접적인 손실을 끼칠 뿐 아니라 연관 산업의 생산활동에 큰 지장을 준다. 노조가 약자의 조직에서 사회적 강자로 올라서는 조건이다.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언론 및 노조 출신 다수가 포진한 정치권의 지원도 노조의 강한 힘의 원천이다. 더욱이 현 정부 탄생에 중심적 역할을 한 노조는 정부를 움직여 입맛에 맞는 정책을 직접 기획·실행하기도 한다. 불법적인 파업과 노동현장에서의 불법행위가 용인되기도 한다. 아예 한국 사회의 지배권력이 된 느낌이다. ‘노조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가 ILO 협약 비준 추진과 함께 노동관계법 개정에 나선 것도 노조의 요구대로다. 법 개정안에는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안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해고를 겁내지 않는 투쟁, 이념투쟁, 정치투쟁을 불러들여 산업 평화를 해칠 것이 분명하다.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규정 삭제와 근로시간 면제제도 완화도 추진하는데, 이는 노사정 간 주고받기식 타협으로 겨우 정착시킨 전임자 제도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노조의 힘을 더욱 키울 이들 개정안은 지금껏 입법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ILO 협약 비준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노조에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반면 꼭 필요한 개혁안으로 제시돼온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은 제외됐다. 노조가 사업장을 점거하며 파업할 때 사측의 대응수단은 현재로선 직장폐쇄밖에 없다. 그러나 사측이 이를 쉽게 쓰기는 어렵다. 합법성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불법’ 판정을 받으면 사업주가 형사처벌되기 때문이다. 창을 든 상대방에 맞서 방패도 못 쓰는 형국이다. 파업 시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되면 노사 간 ‘무기 대등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다. 이는 힘의 균형을 통해 산업 평화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개정안은 이미 노 측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노사관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할 것이다. 노조 권력의 강화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하위권으로 평가하는 노동시장 부문 경쟁력이 더욱 떨어져 국가경쟁력도 끌어내릴 것이다. 자본의 해외도피(capital flight)를 가속시켜 고용 문제도 더 심각하게 할 것이다. 노조 권력만 강화하는 일방적인 노동관련법 개정 추진은 중단하는 것이 옳다. 적어도 대체근로 허용 등의 대항수단 마련이 병행 추진돼야 한다.
원문보기: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19101437251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