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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위원장 “비리조사처 신설 안됩니다”
2004-06-08 18:58

김병준(金秉準)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대통령직속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신설하라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부방위의 정책기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신중론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부방위 업무보고 회의에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 문제와 관련해 “예민한 사안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비리조사처 신설과 수사권 부여의 효율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부방위에 비리조사처를 둘 경우 부방위의 주요 업무인 정책기능이 약화되는 반면 비리조사가 핵심 업무로 뒤바뀌는 등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가 전했다.

김 위원장은 그 이유로 “부패방지와 관련된 정책을 수행하는 조직에 수사권을 부여하면서 수사 집행업무까지 맡기면 원래 기능인 정책 수행업무가 죽을 우려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정부조직 개편의 큰 골자도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을 분리하자는 것인데 부방위 산하에 비리조사처를 별도로 둘 경우 이 같은 기본 원칙에도 어긋난다”면서 “부방위가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수사권을 준다고 해도 기존의 정책기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비리조사처 신설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선거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꼭 실천해야 한다 하더라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일부 참석자들은 “검찰의 수사권과 중복될 소지가 있고, 고위공직자가 사정의 칼에 지나치게 휘둘릴 경우 관료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현상이 우려된다”는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8일 이에 대해 “부방위에 비리조사처라는 집행기능을 덧붙일 경우 부방위의 고유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검찰과 부방위가 경쟁적으로 고위공직자 사정업무에 나설 경우 정치권의 공직자 추천기능도 위축되지 않겠느냐”고 부작용을 염려하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공직비리 수사기구가 이원화되면 수사과정에서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고, 검찰에 대한 불신감을 높일 수 있다”면서 비리조사처 신설이 옥상옥(屋上屋)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대 교수(행정학) 출신인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2002년 대선 자문교수단을 이끌었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를 거쳐 대통령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