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홍성걸 칼럼] 정치엘리트 충원과정, 이대로 좋은가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총선이 다가오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이번 국회가 역대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당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들로서는 국민의 실망을 그대로 안고 선거판에 뛰어들 수는 없다. 그래서 정치권은 대거 새 인물을 영입할 필요가 있고, 정치신인들은 이를 통해 국회에 진출하려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정치엘리트 충원과정이다.

과거 한때 보스에 의해 픽업되어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되면 그것이 곧 훈장이 되어 정치권에 진출하는 발판이 되곤 했다. 오늘날에는 총선이 가까워 오면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을 찾아 새 정치인재라면서 영입한다. 청년인재로, 여성인재로,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장애인을 대표해서...주요 정당들이 이런저런 사람들을 찾아내 영입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들이 왜, 어떤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기에 정치인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감성적 수준에서 기억에 남을 스토리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영입과정에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입법부에 진출해 국민을 위해 일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재선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 국민에 충성하기보다는 당내 공천권을 가진 지도부에 충성하기 일쑤다. 헌법기관으로서 바르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당론에 따라 패거리 정치에 휩쓸린다. 시간이 갈수록 진영논리에 빠져 정치는 품격을 잃고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마치 부모 죽인 원수 대하듯 상대방과 난투극을 벌이다보면 어느새 청산되어야 할 구시대 정치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정치가 다른 분야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 되었음에도 우리는 정치엘리트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다. 각 정당들이 운영하는 정치아카데미가 있지만 사실은 선출직에 진출할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특강과 세미나를 하면서 각자의 진영논리만 강화될 뿐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나라를 세계 중심국가로 이끌 지도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 가까운 일본은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세운 마쓰시다 정경숙을 통해 사회의 지도급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평당원에서 시작하여 지방과 중앙의 인민위원회를 오가며 최소 10여 차례 이상의 공개적 경쟁과정을 통과해야만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동할 정치인재가 될 수 있다. 미국도 마을과 지역 수준의 정치에서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경쟁을 거쳐 하원과 상원의원 등의 자리에 진출할 수 있다. 어느 나라도 갑자기 누군가의 눈에 들어 중앙정치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곳은 없다.

새로운 정치엘리트는 인격과 품격은 기본이고 국내외 정치와 경제 관련 전문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은 물론,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봉사정신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그들은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하고 4차 산업혁명의 의미와 세계화의 시대에 걸맞도록 주요 외국어와 세계의 문화와 역사에도 능통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인재들은 오로지 대한민국과 국민에 충성하는 국가관과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가르치면 될 것이다. 보수나 진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아예 필요 없다. 이념과 가치성향은 개인적 판단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열어두면 된다.

우리의 미래를 선도할 정치지도자 양성은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의 투자와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나 브루킹스, 일본 마쓰시다정경숙처럼 뜻있는 사람들이 기부를 통해 조건 없는 정치엘리트 양성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선거 때마다 무늬만 인재라는 가짜 정치엘리트들이 부나비처럼 몰려들고 지긋지긋한 진영논리에 의한 무의미한 싸움이 반복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0021302152269660001&ref=naver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