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창간 85주년]이미지는 논리다… 현대미술은 함축된 지식의 언어 / 김재준(경제)교수

[동아일보 2005-03-31 22:03]


“영어를 못하는 미술가는 미술가가 아니다(AN ARTIST WHO CANNOT SPEAK ENGLISH IS NO ARTIST).”


이 문장은 지난해 말 열렸던 서울 마로니에미술관 주최의 국제교류전에 초대된 므라덴 스티리노비치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작가의 생각을 문장으로 써서 벽에 전시했던 것을 다시 티셔츠 위에 인쇄해 판매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을 개념미술이라고 부른다.


영어를 할 줄 모르면 현대미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세계 미술의 중심이 어디에 있고 의미 있는 담론이 어디에서 생산되고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50년 전 이야기다. 정말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는 뉴욕-런던-베를린으로 연결되는 축에서 만들어진다. 네덜란드 스위스 등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영어 해독능력이 뛰어난 곳에서 창조적 산물이 나오고 있으니 영어를 모르면 세계적 예술가가 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중요함이다. 혼자 작업실에서 작업에만 몰두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비판받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 특히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어울리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새로운 작업의 영감을 찾을 수 있다. 영국 런던이 대표적인 예다.


셋째, 미술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매우 지적인 작업이다. 감성으로만 현대미술에 접근할 때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작품 뒤에 숨은 자기성찰적 생각, 자신의 조형어법을 풀어나가는 구조적 통찰력 이런 것이 중요하다. 모든 현대예술은 언어적이라고 한다. 간략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자신의 작업을 바꾸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미술가들을 보면 작품의 제목을 참 잘 붙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들은 인상파까지만 편안하다고 한다. 과거의 미술이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머리로 이해하는 미술이다. 비엔날레에 전시된 작품을 이해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생각해 보자.


생각은 언어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와 이미지로 하는 것이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은 창조적인 작업에 정말 중요하다. 필자가 만나본 많은 세계적인 학자들은 이미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능숙했다. 미술이 대학교 교양필수 과목이 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또한 현대미술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스스로 작가와 평론가가 되어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서양의 미술사, 문학, 철학 등 다른 예술 분야의 폭넓은 지식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서양미술사의 많은 걸작들이 과거의 거장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 창조적 과정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시대를 풍미한 미술, 음악, 문학, 건축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림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의 숫자는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


김재준 국민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