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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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전도사’ 김재준교수 7일부터 일민미술관서 강연
[동아일보 2004-10-07 00:51]


김재준 교수(44·국민대 경제학부)가 컴퓨터를 켜자 갑자기 영화 ‘패왕별희’에 나오는 경극이 흘러나온다. 화면에 뜬 이미지들은 알파벳 글자들이 한 단어로 뭉쳐진 이색 그래픽들이다. 예를 들어 ‘earth’가 일렬 알파벳이 아니라 위 아래로 뭉쳐져 나타난다.

김 교수는 “철자를 나열하는 영어와 뭉뚱그려서 한 단어로 표현하는 한자의 차이를 이미지화해 외국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의 취미치고는 이색적이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 교수는 서울대와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지만 컬렉터로서 자신이 체험한 미술시장의 이면과 폐쇄성을 그린 저서 ‘그림과 그림값’(1997년)을 펴냈다. 올 6월에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인전 ‘전쟁의 재구성’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미술을 코드로 한 ‘창의력 전도사’로 나섰다.

“훌륭한 화가가 많은 나라에 훌륭한 예술가도 많아요. 20세기 들어 첨단 디자인을 가장 많이 내 놓은 영국은 노벨상 수상자를 둘째로 많이 배출했습니다. 예술적인 것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공계 학문에서도 그래프 등 시각적인 이미지로 사고하는 훈련이 중요해요.”

예술이든 다른 학문이든 창조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김 교수의 체험적 결론은 ‘순수미술’을 해보는 것이야말로 창의성 증진에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방법론을 체계화해 여러 대학과 기관에서 강의를 해 온 그가 7일∼12월 9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화가처럼 생각하기’를 제목으로 10주간 강의한다. 같은 제목으로 책(전 2권·각권 1만4500원·아트북스)도 펴냈다.

그의 강의는 단순히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창의력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숨은 감각을 자극하고 억눌려 있던 욕구를 해방시킨다는 게 목표다. 미술은 예술가들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인간은 모두 ‘이미’ 창조적이기 때문에 화가처럼 생각하면 화가처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선긋기에서 시작해 회화, 조각, 건축, 퍼포먼스 등 미술의 영역을 수강생들이 직접 하도록 하는 것이 이 강의의 주 내용이다. 자유롭게 선을 긋고 얼굴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풀기가 끝나면 소리를 표현하기, 남의 그림을 보고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고 자기 느낌을 이야기하기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속 응어리와 희망, 답답한 삶의 출구 등을 자신도 모르게 담아내게 됩니다. 실상 위대한 작품들은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살면서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대체 얼마나 ‘내 자신이 바라는’ 모습일까. 작업 도중 누구나 자연스레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요.”

김 교수는 창의성 계발을 위해 그림 그리기 이외에도 달리기, 노래하기, 쓰기를 권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방시켜 달리고, 노래하고, 그리고, 쓰면 마음속 고정관념이 하나하나 깨져 상상력과 창의력의 구석구석을 단련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