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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포럼-사회갈등, 누가 관리하나? / 배규한(사회)교수 (한국청소년개발원장)
[매일신문 2004-10-19 14:51]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도 사회갈등이 많은 사람의 관심사로 등장했고,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사회갈등이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갈등의 범위가 넓어지고, 빈도는 증가했으며, 강도는 더욱 커졌다.

처음에는 주로 노사갈등이었지만, 곧 이어 지역갈등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계층, 성, 세대, 이념, 교육, 역사관, 세계관 등 전 방위로 확대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사회갈등이 계속 증폭되고 있는가? 사회갈등은 다양한 집단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발생한다.

인간세상에서 이해충돌은 늘 있는 현상이지만, 그것이 어느 한쪽 집단에 지속적으로 불리하도록 구조화되면 갈등 발생의 토양이 된다.

이러한 구조적 여건에 대해 당사자들이 인식하고 불평등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 어떤 계기에 사회갈등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사회갈등이란 발생해서는 안 될 악덕이 아니라, 불평등하거나 불공정한 현실적 문제를 드러내 주고 치유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갈등을 야기하는 당사자들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갈등을 억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갈등이 발생하는 토양을 분석하고, 당사자들의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갈등의 근원을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장 갈등구조를 타파할 수는 없더라도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갈등을 관리하며 완화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갈등이 끊임없이 분출되었지만 관리의 대상으로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예컨대, 노사갈등의 근원은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야기된 분배의 불평등과 기업가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개선노력은 적고, 오로지 사회불안, 성장의 걸림돌 등의 논리로 갈등을 없애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지역갈등의 경우는 더욱 한심하다.

지역 간 불균형 성장의 결과가 주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선거 전략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했다.

노사, 지역 간 갈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노회한 정치인들에 의해 악용되면서 계층 간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남녀, 세대 간 갈등은 사회가 급격히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역할조정이나 사회화 과정의 결과에 따른 인식 및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다.

서로 상대방의 가치관과 행위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개선 노력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기존 질서에 순응시키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이 증폭되는 것이다.

다양한 갈등이 중첩적으로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이데올로기화 하여 마치 한국사회에 ‘진보’와 ‘보수’라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그것은 자칫하면 갈등을 내실 없는 추상적 논리싸움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갈등의 구조적 여건을 개선하기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수사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승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며 갈등의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 일차적으로는 정치인 또는 정책담당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책임을 미루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갈등으로 인해 몰락하는 개인이나 가정의 경우처럼, 국가도 갈등이 심화되다 보면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외부 침략보다 내분으로 인해 몰락한 나라의 예가 많고, 내분이 외침을 불러온 경우는 더욱 많다.

개인적 갈등의 경우 상호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되면 서로가 감정을 삭이고 타협과 양보를 통하여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다.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 방법에 따라 갈등을 관리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갈등의 골이 깊다고 하지만 아직은 갈등에 휩싸이기보다 객관적·중립적 입장에서 관망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이들이 중심축을 잡아주어야 할 때이다.

이들이 나서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잃은 사람들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배규한(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