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자연과 삶/전영우]우리가 소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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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4-12-06 21:21]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 온 선생의 억양은 조금 어색했다. 라디오 방송의 책 소개 프로그램을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전화를 건다면서 34년 전에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갔고, 매년 시제 때 고향을 방문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용건은 어머니 묘소 주변에 저절로 자라는 어린 소나무에 대해 자문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조금은 사무적이던 나의 응대는 소나무란 단어가 튀어나오면서 사뭇 달라졌다. 십년지기처럼 대화 분위기도 금방 친숙해졌다. 며칠 뒤 우리는 만났다. 선생은 어린 소나무가 자라는 위치를 꼼꼼히 그려 넣은 묘소 주변의 약도와 사진 몇 장을 준비해 나오셨다. 어린 소나무의 앙증맞은 모습과 함께 마치 플라스틱 벙커처럼 밑바닥을 잘라낸 화분을 뒤집어쓴 채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를 찍은 사진들은 인상적이었다. 하고 많은 나무들 중에 묘소 주변의 어린 소나무만을 애지중지 보살피는 이유를 물었다. 나의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은 400년 종가의 역사와 함께 평생 종가를 지켜 낸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종손의 신분으로 타국으로 이민갈 수밖에 없었던 회한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긴 가족사가 끝나갈 즈음 마침내 고대하던 답변이 나왔다. 무덤가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싹을 갓 틔운 어린 묘목들이 눈에 띄었단다. 하루하루 새롭게 발견한 어린 묘목은 어느 순간 이승의 자신과 저승의 어머니를 이어주는 끈과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단다. 그때부터 소나무는 어머니의 화신과 다르지 않았단다. 어린 소나무 묘목이 선생과 어머니를 이어주는 끈이라는 답변에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소나무란 무엇일까. 400년 이어 온 종가를 지킨 어머니와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지고 타국으로 이민 간 종손을 이어주는 끈이 소나무 아니던가. 어디 그뿐인가. 소나무는 한번 만난 적이 없는 우리 둘 사이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순식간에 이어주지 않았던가. 이 땅을 떠난 사연이 무엇이건, 얼마나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했건, 어떤 직업을 가졌건, 또 나이가 얼마나 많건 상관없이 소나무는 개인과 개인을 우리로 함께 묶는 끈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나무다. 30년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소나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문학 예술 종교 민속 풍수사상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이 땅의 풍토와 절묘하게 결합하여 우리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상징 노릇을 톡톡히 했다. 소나무가 품고 있는 생명과 장생, 절조와 기개, 탈속과 풍류, 생기와 길지(吉地) 등의 상징은 한국인의 또 다른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이 땅의 소나무들이 소나무재선충병의 창궐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일본 전역의 소나무는 이미 이 병으로 전멸했고, 우리도 지난 15년 동안 피해면적이 1800배나 늘어난 형편이다. 특별법이라도 제정해 전멸의 위기에 처한 우리 소나무를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나무가 세대 간, 빈부 간, 지역 간의 벌어진 틈을 메워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생명문화유산이기 때문은 아닐까.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