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女論與論>미술관에도 기부를! /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미술학부 겸임교수)

[문화일보 2005-01-15 12:29]

새해 첫주 묵은 신문을 정리하던 도중 놀라운 발견을 했다. 전시 기획 주제에 관련된 스크랩을 위해 매일 20여 종에 가까운 신문 과 잡지를 읽었지만 그 많은 신문 중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경제 면은 손을 댄 흔적조차 없지 않은가. 심지어 경제가 중심인 경제 신문마저 경제면만은 처녀지처럼 순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알 수 있었다.
‘유례없는 불황의 여파로 온 국민의 관심사 0 순위가 재테크라 는데 유독 나만은 딴 별에서 날아온 외계인처럼 경제맹이었구나 ’ 생각되어 가슴이 철렁했다. 큰 반성과 더불어 새해에는 경제 면을 샅샅이 훑고 공부해 경제 짱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독자 중에는 문화의 첨병인 미술관 관장이 경제에 무능하다는 사 실은 전혀 흉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미덕이라는 의견을 가 질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돈을 밝히지 않은 초연함 을 문화인의 으뜸 자질로 꼽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부와 우아함 의 상징인 미술관에서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 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귀한 지면을 빌려 돈타령을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불과 몇 개 미술관을 제외한 풀뿌리 사립 미술관 들의 살림살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때문이다. 재정 자립도가 2 0%가 넘은 미술관은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내친김에 허울만 좋은 미술관의 옹색한 곳간을 들쳐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과연 그 곳은 무슨 돈으로 전시를 꾸미고, 운영비 를 마련하고, 직원들의 급여를 주는 것일까? 미술품을 팔아서 수 익을 낸다? 그러나 미술관은 문화관광부의 등록을 마친 비영리, 공익적 성격을 지닌 문화기관이다. 따라서 미술품을 거래하는 갤 러리와 달리 상행위를 할 수 없다. 미술관은 그림을 파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소장품을 늘리기 위해 그림을 산다.

입장료 수입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미술관의 입장료는 2000원 을 채 넘지 않는다. 미술관에서 전시회 하나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최하 수천만원의 비용이 드는데도 입장료를 올릴 수 없는 형 편이다. 열성 관객마저 발을 끊게 하는 우를 범할지 모른다는 두 려움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성과 다양함을 자양분으로 삼는 미술 관들이 입장료 수입만을 겨냥해 작년 최대 대박 전람회로 회자된 ‘샤갈’ 류의 전시회만을 국화빵처럼 열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하지만 ‘문화의 세기’라는 구호가 무색 하게 2004년 난생 처음 사립 미술관들은 로또 기금에서 전시비용 을 지원 받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2 개의 기획전을 진행해 겨 우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미술관장, 큐레이터 유능함의 잣대가 전람회 질이 아닌 전시비용과 운영비, 인건비 등 돈을 끌어오는 일이라는 것은 미술계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열악한 우리 미술계와는 달리 미국을 비롯한 문화선진국 에서는 정부, 기업체,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미술관을 후원한다.

미국에서는 학교, 종교기관, 미술관 이 세 곳을 국민들에게 가 장 소중한 장소로 여기며 자부심을 갖게끔 배려한다. 학교는 지 식을, 종교기관은 영혼을, 미술관은 교양과 정서를 길러주는 곳 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예술의 수호천사들이여 궁전처럼 호화롭고, 문턱 높은 일부 미술관의 화려한 외양에 속지 말고 올 한해 재정에 허 덕이면서도 의지와 열정으로 미술을 꽃피우는 풀뿌리 사립미술관 들에 따스한 애정의 손길을 베풀어주시길, 행여 그대들이 미술에 대한 짝사랑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다면, 미술 애호가의 꿈을 아 직 버리지 않았다면, 제발 이제 갓 태동한 사립미술관협회에 기 부를! 덤으로 세제 혜택의 선물이 주어지리니. 그대가 보낸 후원 금은 전시와 소장품의 질을 높이고 작가의 제작비용을 지원하는 일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아울러 가난한 이웃 중 많은 미술인들이 포함되었다는 현실을 늘 염두에 두시길, 천문학적 액수에 작품이 판매되어 부와 인기를 누리는 작가는 불과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 길!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국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