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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문서 공개] 전문가 좌담/의미와 남은 과제 / 이원덕(국제)교수

1965년 한일수교협상과 관련된 외교문서가 공개된 뒤 일제징용 징병 피해자들의 보상요구와 과거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18일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김창록 부산대 법대교수 등 한일관계 전문가 3명을 초청,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한국일보 11층 인터뷰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기위해서는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법적 물질적 배상논의 차원을 넘어 한일 양국의 정치적 해결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서공개의 의미와 한계

▦이원덕= 공개된 자료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일협정, 좁게는 청구권 협정을파악하는데도 불충분하다. 문서공개의 직접적 계기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피해자들에 의한 소송과 법원의 결정이기 때문에 개인청구권 부분이 회담과정에 어떻게처리됐느냐에 문서공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내용도 1963년 이후 국내자료에 한정돼 있어 일본측 입장이 불명확한 점 등 큰줄기를 파악하는데 문제가 있다. 한일협정은 61~62년 사이에 진행된 ‘김-오히라 메모’에서 전체적 합의가 이뤄졌는데도 그 시기의 자료가 누락됐다. 한일수교회담의주요한 축인 미국측의 입장도 알 수 없다.

▦김창록= 한일협정 40년 만에 이뤄진 문서공개가 때늦은 감이 있다.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문제와 관련해 어떤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정도가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청구권 문제 외에도 한일협정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선 추가적 자료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일양국의 책임 소재도 명확히 가릴 수있을 것이다.

▦김민철= 공개된 문서들은 3급 비밀자료가 대부분이다. 생산된 지 2년 정도 지난 66~67년 비밀 해제된 문서들이다. 이미 95년 미국에서 공개된 문서들도 상당수다. 피해자들의 개인적 권리가 회담과정에서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만한 내용이 없다.

▦김창록= 피해자들의 정보공개 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문서를 공개한 것에는 의미를 부여할만하다. 더구나 올 8ㆍ15까지 추가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김민철= 자료공개를 놓고 정부 내에서도 분명한 시각차이가 있었다. 관련 부처는반대하는데 집권자가 정보의 민주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용단을 내렸기 때문에 공개가 가능했다. 당초 외교통상부는 문서를 공개하더라도 (정보공개 소송의) 대법원판결이 날 때 공개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외교부는 문서공개가 한국 내 반일감정을 자극해 양국간 우호관계를 해치고, 북ㆍ일수교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소극적입장으로 일관했다.

▦이원덕= 한일수교회담의 의제는 매우 다양했다. 개인청구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36년의 한일 양국의 기본관계, 어업문제, 독도영유권, 재일동포 법적지위, 문화재 반환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당시에 다뤄졌다. 한일협정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선 외교부 문서 외에 정치 지도자들이 양국을 오가며 가졌던 비공식적회담 관련 자료들도 중요하다.

▦김창록= 개인청구권 관련해서 당시 정부는 피징용 사망자에게만 배상금을 지급했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배제했다. 이들이 배제된 과정을 파악하는 것은 한국정부의책임을 판단하는데 중요하다. 외무부 관련자료뿐 아니라 당시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등이 입안한 청구권 관련된 자료들도 공개돼야 한다.

▦김민철= 중앙정보부의 고급정보들도 공개돼야 한다. 또한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보면 한일양국이 개인청구권과 관련해 ‘청구권 법적 문제 소위원회’를 만든 것으로돼 있다. 소위원회의 존재는 이번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그 회의록 일체가빠져 있다.

■ 정부의 개인청구권 포기 논란

▦김민철= 합의의사록을 보면 한국정보가 일본에 요구한 대일청구권 8개항이 있다.모든 청구권은 종결된 것으로 했고 개인청구권은 각자 알아서 국내 문제로 처리하기로 한 것처럼 돼 있다. 징용자 피해문제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까지 그 범위에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현재 문서로는 확인이 안 된다. 우리 정부가 개인청구권을어느 선까지 소멸시켰는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김창록= 일본은 한국정부가 자금을 받으면 개인의 청구권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줘야할 것으로 막연하게 인식한 것 같다. 한국정부가 보상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재산권’이다. 한국정부가 보험이나 저축, 미군정에 맡겼던 일본은행권 등 사유재산권에대해서는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 보상도 이뤄졌다.하지만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군대위안부 문제 등은 재산권이 아니라 손해배상청구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기가힘들다.

▦이원덕= 공감한다. 한국정부는 개인들의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철저하지않았다. 어떤 법적 근거로 어떻게 배상할 것인지의 문제를 간과했다. 대일배상 요구에 막연히 개인청구권 문제를 끼워놓은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정부의 불철저한 태도를 문제 삼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 정부가 청구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나를 주시해야 한다.

마치 이번 문서공개로 ‘일본은 제대로 보상하려고 했는데 한국이 그 용도대로 안하고 피해자 구제에 나서지 않았다’는 오해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일본이 개인피해배상에 대해 일관된 반대입장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일본은 민법상 권리의무관계에 있는 부분만 보상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협상에 임했다.

반면 강제연행자 피해배상에 대해서는 전면 거부입장을 갖고 있었다. 3억6,000만 달러의 자금성격에 대해서도 청구권변제나 배상금 용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처음부터 경제협력 차원에서 돈을 준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나중에 일본 내에선‘독립 축하금’이란 말도 나왔다. 스스로 청구권 자금 아닌 것으로 규정짓기 위해노력한 것이 분명하다. 한국정부는 그렇게 집요하고 주도면밀한 일본정부와 협상을한 것이다.

▦김창록= 개인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가지다. 한국측의 경우 협상에 임하면서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많은 자료들이 소실된 것도 이유다.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일본측에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등 준비도 철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은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나왔다.

한국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정말 집요했다. 협정문만 봐도 2조1항에 쐐기를 박았고 3항과 합의사항 3번에서 다시 쐐기를 박았다. 그것으로 (개인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끝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 향후 배상의 책임소재

▦이원덕= 국제법 등 형식논리만 따지면 배상책임은 우리정부에게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일본측은 자금제공의 성격을 청구권과 청구권 변제대신경제협력자금이라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논리상의 모순이다. ‘경제협력을 위해돈을 줬는데 그 결과 청구권이 해소됐다’는 논리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것은 더 논의가 있어야 한다. 법적 문제뿐 아니라 도의적인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김민철= 공개문서를 통해 확인된 내용은 한국정부가 법적 책임을 떠맡고, 일본정부는 청구권의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본이 강제노동, 반인도적 범죄 등에 대한 법적 책임마저 회피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가령 한국뿐 아니라 일본 의회도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피해자들이 노구를 이끌고 바다건너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사정이 이런데도 일본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잘못된 한일협정은 식민지배 피해가 지금까지 지속되게끔 만들었다. 한국정부의 책임도 있지만 일본정부의 몫도 있는 만큼 책임문제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

▦김창록= 동의한다. 하지만 법적 책임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일본정부를 상대로한 소송에서 이미 여러 가지 법 논리가 나왔다. 어떤 상황이든 반대의 법 논리를 만들 수 있다. 공개문서를 바탕으로 한 한국정부 상대 소송 역시 반드시 피해자가 이긴다고 볼 수 없다. 법정에선 엄격한 입증이 요구되는데 60년 넘게 지난 피해사실을 피해자들이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법정다툼은 피해의 구제 범위를 좁힌다.

일본은 한국에 배상금이나 보상금을 준 적이 없다. 90년대 계속된 한국피해자의 소송에서 일본 법정은 일본 정부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다고 했다. 사실 60년대에도그랬다. 만약 이번 문서공개를 빌미로 일본이 책임을 한국정부에 떠민다면 90년대일본에서 있었던 소송제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다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소송을 통한 해결은 어렵다. 법적 책임을 따지는 일은 응당 해야 하지만 법적 책임을지우는 방식은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일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원덕= 한국정부에 대한 소송이 늘 것이다. 하지만 200만 명에 이르는 강제연행자의 손해부분을 어떻게 측정하고 제시하며, 증거자료를 확보할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형평에 맞게 배상하느냐 등을 따지기가 매우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36년 동안 조선민족 전체가 피해자 아닌가. 예를 들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한 사람이 우리도 피해자라고 나서면 어떤 원칙에 따라 구제조치를 할 것인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현재 논의되는 103만 명 강제노동은 피해 손실의 일부일 뿐이다. 현 정부의 힘으로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는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래서 법보다는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김창록= 그렇다 해도 직접 피해의 구제는 소홀히 할 수 없다. 일차적으로 해결해야한다. 징용 당시 체불임금 등은 한국정부가 정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입증 가능한사람에게만 국한해선 안 된다. 나머지는 큰 틀에서 해결해야 한다. 피해범위가 넓고,기간이 오래됐고, 외교관계까지 얽혀있기 때문에 사법적 해결보단 입법적 해결이 바람직하다.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한다. 법률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 배상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김민철= 한국정부가 대책기획단을 꾸렸다는 건 이미 구상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잘못하면 피해문제가 단순히 돈 문제로 귀결 될 수 있다. 광주민주화항쟁부터 거창양민학살까지 돈 문제로 따지는 바람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하지 않았는가. 지금껏 우리정부의 보상문제해결방식은 너무 일차원적이었다. 앞으로 강제노동을 비롯해 수많은 보상문제가 제기될 텐데 중요한 것은 사회적합의다.

피해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이뤄졌는가 밝히는 게 중요하다. 그 피해 대가로 포항제철이나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 아닌가. 결국 사회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다. 기업과 사회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개인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피해자 개개인에게 당장 보이지 않는 혜택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사회전반에 걸쳐 접근해야 한다. 독일의 예를 따르거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김창록= 독일은 유대인 문제해결을 위해 ‘기업책임미래’라는 기금을 만들었다.미국에서 나치의 강제동원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자 처음엔 코방귀 뀌던 독일이 자국기업의 이미지 실추로 문제가 확대되면서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내놓은 문제 해결책이다. 독일 역시 법적 책임은 무시했다는 점에서 일본과 같지만 도의적 책임은졌다.

▦김민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선 대책기획단에 처음부터 피해자 대표, 사회단체 대표, 전문가 등이 참여해야 한다. 문서공개 역시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할 게아니라 당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공개하고 그 방안들을 풀어나가야한다.

■ 앞으로의 해결 과제

▦이원덕= 걱정되는 건 문서공개의 의미가 ‘일본은 책임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니책임은 한국의 몫’이라는 등식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본질은 한일 공동책임 하에과거 피해자 구제문제를 풀고 화해를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장기적인 과제다. 그렇게 되면 전후 문제 처리가 공백인 북한 문제도 함께 논의할 수있게 된다.

▦김민철= 동감이다. 한일정부가 모두 나서야 한다. 법적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다.한국 내에서 가시적인 노력이 있으면 일본시민사회도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 일본에 충격을 줄 것이다. ‘한국은 하는데 우리는 못 하는가’라는 자기각성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우익이 이번 문서공개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결국 그 파장이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정부 대 정부 구도가 힘든다면 시민사회 상호간 교류로 풀어가자. 공개된 문서 자체는 큰 것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김창록= 일본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일본 스스로에게 중요하다. 일본이 국가적 위상에 비해 목소리가 작은 건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기금을 만들면 거기에 일본 정부와 기업이 참여하는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기금이 피해자에 대한 의료혜택이나 장학제도 등 장기적인 대책에 활용된다면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의 골과 한일관계를 푸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범위를 넓혀 북한까지포함한다면 최선이다. 알려진 북ㆍ일교섭 내용을 보면 65년 한일협정과 똑같다. 이대로 가면 결국 똑같은 문제를 떠안게 된다.

▦이원덕= 이번 문서공개로 인해 한일관계가 큰 틀의 변화를 겪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과거사 청산은 물질적 청산과 정신적 청산으로 구별할 수 있다. 물질적 청산은일본이 가장 꺼리는 부분이다. 10억 명 아시아인에게 보상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한번 둑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다. 정신적 청산은 철저한 자기 반성이다.이것을 구별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법적, 물질적청산만 따지지 말고 둘을 구별해서 차근차근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김창록= 하지만 둘을 구별하면 애매한 점이 있다. 협정문을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95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도 법적책임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정신적인 청산 뒤에 물질적 청산이 뒤따라야한다는 얘기다. 또 물질보상이 일본에게 부담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의 국가적 지위 향상효과와 비용을 따지면 의미 있는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정리=변형섭 기자 hispeed@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한국일보 2005-01-18 18:2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