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일정상회담이 남긴 것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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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덕/ 국민대교수·국제학부>
지난 9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은 북한의 전격적인 핵실험 사태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부랴부랴 치러졌다. 애당초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이번 방한은 과거사 갈등으로 헝클어졌던 한·일 관계 복원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중국에 이은 아베의 한국 방문은 일본의 ‘근린외교’ 정상화를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으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갑작스러운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말미암아 과거사 문제보다는 대북정책의 조율 문제가 핵심 의제로 급거 설정되었다. 회담 결과는 핵실험에 따른 엄중한 상황 탓인지 개별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되었고, 그 내용도 핵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처 방안이 중심을 이루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에 관해서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했지만 한·일 관계의 건설적인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대응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참배 단념 의사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역사교과서 왜곡, 일본군 위안부 보상 등의 문제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아베 총리가 한국 국민의 감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화답했다. 어느 것 하나 구체적인 합의나 속 시원한 해법이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양국이 역사마찰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호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단초는 마련되었다. 따지고 보면 과거사 갈등의 근본 원인은 역사 인식의 괴리에 있는 만큼 한 번의 만남으로 전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역사 마찰 문제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방향에서 시민사회 간 공조 및 국제적 연대노력에 의해 풀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양 정상은 북한의 핵 개발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엄중한 사태라는 인식에 서서 북한을 한 목소리로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한 북한의 핵 개발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공통인식 아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미국·중국 등 관련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한 대응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그간 한·일 양국은 대북 정책의 접근 방법을 두고 적지 않은 온도 차를 보여 왔다. 한국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기조 아래 포용 노선을 견지해온 데 반해 일본은 납치, 핵, 미사일 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미국과 더불어 압박과 제재에 중점을 둔 대북 정책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사태로 상황은 급변했다. 한·일 양국은 대북정책에서 나타난 접근법의 차이를 넘어서 대북정책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비록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한·일 간 강온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 동북아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인 만큼 이를 해결하고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견인해야 한다는 지향점에 관해서 한·일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정상회담에서 대북 정책에 관한 인식의 공감대가 폭넓게 확인된 것은 적지 않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합의에 기초하여 양국은 북한 핵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엔과 관계국 간의 국제적 스크럼 구축에 적극 나섬은 물론 북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긴밀한 공조와 조율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