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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안부러운 토종 판타지 / 역사 환타지소설 <율려>낸 전승규(테크노디자인대학원)교수

[한겨레 2005-09-19 18:27]





디자인대학 교수가 판타지 소설을 냈다. 소설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니 디자인대 교수라 해서 못 쓸 것도 없다. 그러나 한국 문화의 원형을 기반으로 하고 디지털 영상화를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가르치는 전승규(48) 교수가 낸 <율려>는 857쪽의 대작. 696년 대조영의 발해 건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몇몇 등장인물과 배경만 역사에서 빌렸을 뿐 나머지는 판타지, 우리 민족의 신물들과 중원의 괴물들이 벌이는 싸움 이야기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문화를 지키려면 역사연구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문화콘텐츠 창작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조선 왕손 무와 영고 부부 그리고 두 아들 크니와 해아지. 부모를 죽인 자를 찾아 남행하던 그들은 중원을 탈출한 고구려의 유민 가우리(대조영) 일행과 옛 고구려의 왕검성에서 조우한다. 이들은 모두 고구려 유민의 독립운동을 억누르려는 측천무후와 그 졸개인 황금탈 무리한테 쫓긴다. 무는 가우리의 군사가 되고 그의 아내 영고와 두 아들은 중원의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옥첩과 신물을 찾아 여행한다. 차례차례 찾아낸 옥첩을 통해 칠지도, 삼족오, 치우천왕의 깃발, 해모수의 오룡수레, 구미호 등 다섯 신물을 깨워낸다. 한편 대조영 일행과 측천무후의 추격대는 천문령에서 대결투를 벌이는데, 여기에 중원의 괴물과 우리민족의 신물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승리한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하고 동모산에서는 해원과 상생의 굿판이 열린다.




건국이야기에 여로를 따른 에피소드, 그리고 현란한 전투씬. 소도마을, 하늘바다, 버들궁, 움직이는 성 등 환상적 배경. 전설이나 설화에나 나오는 삼족오, 백호, 불가사리, 구미호, 도깨비, 장승 외에 지은이가 만들어 낸 어처구니, 두억시니, 모르쇠 등이 등장한다. 물론 중국쪽 괴물로는 산해경의 응룡, 축융, 형요, 염화 등이 출현한다. 몽환적인 동시에 사실적이어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형상화 하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일본의 <포켓몬스터>가 동양설화의 캐릭터를 싹쓸이 했어요.




최근 중국에서도 <서유기>에서 김용의 <영웅문>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캐릭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고요. 이러다가 우리나라 것마저 뺏길 것 같았어요.”




평소 국제전시회에 참가하면서 한국이 디지털 콘텐츠나 아이덴티티에서 엄청나게 밀리는 것을 절감한 전 교수는 독자적인 캐릭터 개발을 고심하던 중 영국에서 연구교수로 1년동안 머무르는 기회를 백분 활용했다.




바리바리 싸간 책 가운데 <환단고기> <동이열전> <부도지> <산해경>에서는 배경·인물·환상동물을, <임꺽정> <장길산> <백년 동안의 고독> <푸코의 진자> 등에서는 스토리텔링을 배웠다. 특히 <백년 동안의 고독>은 스무 번 이상 읽었다.






“고구려 유민으로서 황하남쪽에서 북상하여 옛 고구려 땅에 나라를 세우는 인간 대조영이 매력적”이라는 전 교수는 “그에 관한 사료가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그래서 이야기를 꾸리기 수월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불가사리가 코끼리 코, 황소의 눈, 곰의 체격, 호랑이 팔다리라고 하는데 막상 형상화하려니 무척 힘들더군요.” 문헌들 대부분이 구체적인 묘사를 꺼리고 있는데다 그마저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것. 전 교수는 최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하여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초벌작업을 끝내고 소설과 함께 원화집을 냈다. 그는 ‘원소스 멀티유즈’를 지향한 만큼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