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전영우(산림)교수 신간 ' 한국의 명품소나무' 소개
떼끼놈! 소나무 할아버지 고함치시네



한국인 삶에 깊숙이 들어와 수호신이 되고 신앙이 된 소나무

수백년 풍상을 이기고도 노욕 없는 당당한 자태

인간의 욕심이 밑동을 갉아먹고 있다




한승동 기자







▲ 한국의 명품 소나무

전영우 지음. 시사일본어사 펴냄. 3만원





수령 600년쯤, 나무 높이 23m, 가슴 높이의 둘레 3m. 밑동에서 3m 쯤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그 위에서 여덟 갈래로 갈라져 단정하면서도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근처 낭떠러지 절벽 아래 서 있는 삼인리 장사송이다. 나무는 보는 위치에 따라 색다른 모습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줄기 아래쪽에서 위를 향해 바라본 장사송은 푸른 하늘속으로 해초 같은 신경섬유들이 뻗어올라간 듯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영낙없는 신목이다.


이 기막힌 장면을 사진으로 잡아낸 사람은 ‘솔바람 모임’을 결성해 소나무 사랑운동을 펼치는 등 산림문화운동을 활발히 벌여온 산림생물학 박사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과)다. 그가 변형판의 시원한 크기에 전면 컬러사진을 담아 쓴 <한국의 명품 소나무>(시사일본어사 펴냄)는 장사송과 같은 전국의 천연기념물(명목) 소나무 41 그루에 대한 현장 보고서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지난해 6월 한국갤럽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40가지’란 주제로 실시한 조사 결과 나무 가운데서는 소나무가 43.8%로 은행나무(4.4%), 단풍나무(3.6), 벚나무(3.4), 느티나무(2.8) 등 다른 나무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수위를 차지했다. 옛부터 지조·절개·충절·기개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한국인의 감성과 정서,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나무는 나라와 마을의 수호신이었고, 땔감·목재·식약재 등 생존방편이기도 했다. “지난 수천년 동안 한국인의 삶과 풍속, 관습, 사상, 신앙 및 문화활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천연기념물 소나무의 위상은 생명문화유산의 진수 중에 진수”라고 할 수 있다.




200살 백송 석축 때문에 고사




경북 상주 화서면의 외진 곳에는 저자가 “명목 소나무 중에 가장 빼어난 자태를 간직한 나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나라의 보배 소나무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칭송한 반송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나이 500살, 높이 15.3m, 뿌리 둘레 4-, 가지 폭은 동서 27.6m, 남북 18m. 20년 전까지 음력 정월 보름에는 풍년과 행운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렸다. 용이 되려다 못 된 구렁이(이무기)가 이 반송에 살고 있어 흐린 날에는 비 속을 뚫고 하늘로 오르고자 애쓰던 이무기의 소리가 들렸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송 중에서 가장 우아한 자태라는 평을 듣는 선산 독동리 반송.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인터체인지를 나와 선산읍에서 화조리 또는 독동리 방향 이정표를 따라 4㎞ 정도 들어가면 왼쪽 들판에 서 있다. 시사일본어사 제공





그러나 저마다 독특한 사연을 간직한 채 남다른 자태와 위용을 자랑하는 전국 곳곳의 명목들에게 ‘가장 빼어난’ 따위의 비교급·최상급은 의미를 잃는다. “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는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600살 왕송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용트림, “천수관음이 현신한 듯한”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의 만지송, 속리산 정이품송과 교배한 보은 외속리면 서원리의 정부인송, 함양 목현리 구송, 합천 묘산면 구룡목, 무주 설천면 반송, 울진 행곡리 처진 소나무, 예천군 감천면 석송령, 포천 부부송, 장수 의암송, 문경 대하리 소나무와 농암면 반송, 강원도 명주 삼산리와 설악동 소나무 등이 보여주는 자태와 수세는 장엄하고 수려하다. 사진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원래 이 나라에는 식물 221종(63%), 동물 74종, 광물 46종, 천연보호구역 10종 등 351종목의 천연기념물이 지정돼 있었는데, 소나무류가 전체 천연기념물의 12%에 해당하는 42종목을 차지했고 이 속에는 흔히 말하는 소나무(17) 외에 처진 소나무(4), 반송(6), 곰솔(8), 백송(6), 그리고 소나무숲 한 곳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충북 보은의 백송과 충남 서천의 곰솔은 인간의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고사해 지난 8월19일로 지정이 해제됐다. 잎이 다 떨어져 나가고 송진이 배어져나온 백송과 벌겋게 말라죽은 곰솔 최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속이 쓰리다. 한송이 꽃같은 환상적인 자태를 자랑했던 200살의 보은 백송은 나무를 보호한답시고 주변에 석축을 쌓고 흙을 북돋운 게 물빠짐을 방해하는 바람에, 그리고 당당한 자태로 신목으로서의 위상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400살의 서천 곰솔은 피뢰침을 세우지 않아 벼락을 맞고 말라죽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 부를 세계파괴의 암울한 예감은 전주 삼천동의 명목 곰솔의 운명에서 가장 극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해안에서 4-5㎞ 범위 안에서 주로 살아 해송으로도 불리는 곰솔의 서식지로서는 이례적이게도 전주에서 수백년을 살아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9.6m, 동서 34., 남북 29m의 거목으로 자란 삼천동 곰솔은 본래 인동 장씨 장령공파의 선산에 있었으나 198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았고 95년 그 일대가 공원이 되자 장씨 문중이 전주시에 기증했다. 그런데 관리권이 전주시로 이전되자마자 곰솔은 위기에 직면했다. 96년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건설되고 주변 화산로가 확장되면서 수세는 급격히 약해지기 시작했고 2001년도에는 이미 나무의 90%가 말라죽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곰솔 밑동에 뚫린 8개의 구멍으로 주입된 제초제로 판명됐다. 누구 짓인지 아직도 밝히지 못했으나 문화재로 지정된 곰솔을 없애면 주변 개발이 용이해져 적지않은 개발이익을 얻게 될 자들의 소행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소나무와 놀면 병도 낫는다




저자는 명목 소나무마저도 “이 땅을 위협하는 물신주의와 생명경시의 파고를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와한다. 한때 중병에 걸렸다가 소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그 신비로운 생기를 받아 회복됐다고 믿는 그는 ‘소나무와 놀기’를 권장한다. 소나무와 소통하고, 소나무를 좋아하고, 감상하라며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고 소나무들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하지만 따로 가르쳐 줄 것도 없이 책을 읽고 사진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신목(명주 삼산리 소나무)의 제단 앞에 높여 있는 제물(북어 한 마리와 소주 한 병)에 먼저 관심을 기울인 후 제단 주변의 돌담을 감상하자. 그런 다음 소나무를 만나는데, 도로변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된 모습을 담고자 하면 오히려 주차장의 반대편 밭둑에서 보는 것이 좋다. 신목의 어깨 참에 목을 내밀고 있는 참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신성한 나무를 옹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