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도 유기체다. 주변 환경에 맞춰 형태·기능이 변하는 트랜스포머 건축이 뜨고 있다. 사진은 미국 뉴욕의 새 명소로 각광받는 셰드 문화센터. [사진 각 건축사무소]
.뉴욕 맨해튼 서부지역에 들어선 독특한 건축물이 화제다. 지난해 4월 선보인 셰드(the Shed)다. “모든 것을 갖춘 뉴욕의 새로운 아트센터”(미국 CBS)라는 평가다. 21세기 예술가와 대중을 위한 획기적인 건축으로, 뉴욕의 또 다른 명물로 꼽힌다.
뉴욕의 새 명물 셰드 문화센터
외부공간이 극장으로 순간 변신
햇빛 따라 달라지는 아랍문화원
층층마다 움직이는 68층 빌딩도
셰드는 건축가 그룹 딜러 앤드 스코피디오(Diller & Scofidio)가 디자인했다. 철도 기술을 응용해 필요에 따라 이동, 혹은 확장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움직이는 구조물이다. 무엇보다 접었다 폈다를 반복할 수 있다. 8층짜리 건물을 감싼 철골 구조물을 펼치면 1600㎡에 이르는 복층 공간이 생긴다. 갤러리·극장·이벤트장 등을 포괄하는 다목적 아트센터다. 영국 건축가 세드릭 프라이스(1934~2003)가 일찍이 주장한,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건축, 영구적 개방형 건축을 실현한 셈이다.
셰드는 37m 높이다. 철골 구조물 벽면에 설치된 반투명 폴리머(고분자 화합물) 덮개가 레일을 타고 움직인다. 폴리머 소재는 단열 유리 특성을 갖고 있는데, 자연 빛을 투과시키며 실내를 밝게 비춘다. 레일 위에 올려진 덮개를 수평 이동시키면 건물 밖 야외 공간이 실내로 바뀌는 구조다. 최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셰드는 디지털 시대의 건축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트랜스포머 건축’이다. 승용차·트럭이 로봇으로 변신하는 할리우드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현대 건축은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로봇 기술과 센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건물 전체가, 혹은 일부가 움직이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정주 대신 이주를 선호하는 ‘디지털 노마드(유랑자)’의 꿈이 투영됐다고나 할까.
21세기 건축가의 꿈 “인간을 닮아라”
중국 상하이에 들어선 번드 파이낸스센터. [사진 각 건축사무소]
이런 흐름은 20세기 미술에서 예견됐다. 미래파는 현대인 삶의 속도와 기계의 합일을 추구했다. 기존 예술로부터의 단절을 표명하고 기계를 통한 경험, 새로운 재료와 메커니즘의 혁신을 시도했다. 러시아 구성주의는 기계를 예술의 오브제로, 건축의 본질로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기계 부속품 같은 금속질의 기하학적 디자인을 창출했다. 하지만 그들은 회화·조각 등을 통해 기계적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건축적 공간화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그 바통을 21세기 건축가가 이어받았다. 컴퓨터 테크놀러지와 기계장치의 발전으로 많은 건축가가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 중이다. 컴퓨터 언어인 알고리즘을 건축 디자인에 적용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나 서울 청담동 루이뷔통 메종을 디자인한 프랭크 게리의 비선형적이고 불규칙한 공간과 형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요즘 건축가들은 한 발짝 더 나간다. 비선형적인 특이한 형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사이보그적 건축에 도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아랍문화원. [사진 각 건축사무소]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1987년 파리에 선보인 아랍문화원은 살아 움직이는 건축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건물 외부에 빛에 반응하는 조리개 같은 기계장치를 달았다. 외부 빛의 양에 따라 건물 전체 분위기가 달라진다. 건물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수백 개의 광 감지 조리개가 통합된 시스템이다. 창문마다 아랍의 모자이크 문양이 들어 있는데, 빛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갖가지 기하학적 패턴이 형성된다. 정사각형·원형 및 팔각형 모양이 시시때때로 변조되며, 그에 따라 내부 공간도 순간순간 달라진다. 유럽과 아랍권의 문화적 통합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의 68층 회전 빌딩. [사진 각 건축사무소]
.21세기 건축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다. 사람과 장소의 소통, 문화와 공간의 만남을 넓히려고 애쓴다. 이른바 인터랙션이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일례로 하이테크 건축을 주도한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헤더윅 스튜디오와 협력해 중국 상하이 번드 파이낸스센터에 움직이는(키네틱) 파사드(건축물의 주요 전면부)를 구현했다. 상하이 중심에 있는 다기능 예술 문화단지로서의 역사성과 첨단성을 살려내려고 했다. 중국 전통극장의 열린 무대에서 영감을 받은 움직이는 베일을 설치했다.
도심 풍광 바꾼 상하이 파이낸스센터
이 움직이는 파사드는 푸동 지역을 바라보는, 소위 움직이는 풍경틀이다 전시장·이벤트장·공연장을 감싸며 도심 거리에 다양한 표정을 쏟아낸다. 마그네슘 합금 조각 675개로 구성된 베일은 세 개의 트랙을 따라 움직인다. 합금 조각의 크기도 2m에서 16m까지 각기 다르다. 세 개의 트랙이 움직일 때마다 금속 조각들이 겹쳐지며 색다른 시각효과를 빚어낸다. 내부 풍경과 함께 외부 형태가 팔색조처럼 달라진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에게도 멋진 볼거리가 된다. 행인과 건물의 대화쯤 될까.
건축가 장윤규가 제안한 ‘움직이는 광화문 광장’. 날씨 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햇살 밝은 날이면 광장 지하에 설치한 정원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부분을 넘어 건물 전체가 기계처럼 작동하는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데이비드 피셔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선보인 로테이팅(회전) 타워다. 살아 움직이는 기계로서의 건축적 상상력이 빛난다. 각기 다른 형태로 쌓은 68층 건물의 각 층이 음성작동 기술에 의해 자동적으로 회전하는 구조다. 각 층의 회전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일출·일몰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각 층의 움직임에 따라 타워 전체의 외형이 끊임없이 변모한다.
건축의 최종 목표는 인간, 그리고 환경이다. 움직이는 건축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람과 환경의 교류, 소위 인터랙티브를 완성하는 데 있다. 단순한 기계장치 건축을 뛰어넘어 자연의 생명력을 깨우려고 한다. 미래 건축의 열쇠도 그곳에 있다고 본다. 캐나다 건축가 필립 비슬리가 2010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보인 ‘물활론적 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건축에 생물학적 개념을 적용했는데, 미래에 실현될 ‘반응형 건축’을 예감케 한다. 수만 개의 근접 센서와 운동 장치를 결합한 이 건축은 외부에 반응하고 스스로 활동한다. 우리 생체 시스템과 비슷하게 건물에 내장된 기계 지능 덕분이다. 인간의 호흡, 식사 및 신진대사 등을 끌어들인 모양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를 떠난 인간은 위태롭다. 주택과 건물이 중요하지만 공공 공간이 소중한 이유다. 움직이는 건축 또한 도시적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추세에 맞춰 움직이는 광화문 광장을 제안해본다.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행위를 담아내는 ‘트랜스포머 광화문’을 그려본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광장 지하 공간이 올라오고, 그 안으로 식물이 자라고 물도 흐르는 그런 광화문 광장이다. 지금은 백일몽이라 꼬집을 수 있어도 건축은, 그리고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갈 것으로 믿는다.
물안개 속에 떠 있는 듯한 빌딩
블러 빌딩
딜러 앤드 스코피디오는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작업을 보여주는 미국의 건축 그룹이다. 건축과 미디어 설치, 시각예술, 행위예술, 테크놀로지 등 여러 분야를 접목해 예술과 건축의 형태를 지속적으로 실험해왔다.
특히 2002년 스위스 엑스포에서 공개한 ‘블러 빌딩’(Blur Building·사진)이 주목할 만하다. 건물 외부에 3만1500개의 고압 노즐로 미세한 스모그와 같은 물방울을 만들어 마치 빌딩이 호수 위 물안개 속에 서 있는 것과 같은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비확정적인, 움직이는 건축을 선구적으로 구현했다.
이처럼 현대 건축은 구조와 공간, 재료, 외형, 주변 환경 등을 통합해 하나의 새로운 틀을 구성하며 기존에 없던 건축 모델을 제시하려고 한다. 늘 새로워지려는 건축의 과감한 발상을 확인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81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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