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이미지
.정부와 여당에서 공공성 논의가 활발하다. 각종 정책은 공공성·공익·공동선 증진의 이름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공공정책에서는 설득의 논리가 중요하다. 여권이 제시하는 공공성 논의는 외형적으로 공동체주의나 공화주의 모습을 띠고 있다. 기본소득제 도입, 종합부동산세 인상, 공영방송 공공성 강화, 가짜뉴스 규제, 전·월세제 개편 등이 그러하다. 보수 정부 때의 신자유주의 기조와 대비된다. 현재의 공공성 논의는 ▶개인 자유와의 충돌 ▶심의민주주의와 소통 ▶집단주의적 특성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친문은 처벌받지 않는다’ 불문율서 공공성 논의는 공염불
윤미향·조국 사태는 봉건적 관행 여전하다는 사실 보여줘
진영 논리 기반한 공공성 논의는 공화주의 아닌 집단주의
공공성 강화는 심의·소통 거쳐 개인의 자유와 조화 이뤄야
첫째, 공공성 강화 정책은 개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루면서 진행돼야 한다. 공공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기본적 자유권과 충돌하기 쉽다. 개인의 자유를 현격히 침해할 소지가 있는 공공성·공영성 강화 정책은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세금 늘리는 부동산 대책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정교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자유주의자에게 징세는 강제 노동 부과와 같다. 세금은 노동의 결과물을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규제법이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요소를 침해할 소지가 없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가짜뉴스를 판별한다면 그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서 언론을 가짜뉴스 진원지로 지칭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이다. 정부 당국자와 생각이 다르다고 관련 보도를 가짜뉴스로 비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 잘잘못은 재판에서 가리는 것이 순리이다. MBC가 제시한 것은 음성이 녹음된 녹취록이 아니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서류철이다. 유착 관계로 보려면 사실관계가 더 밝혀져야 한다.
소통 정당성은 다수결 아닌 설득력에 달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MBC는 수신료 배분에 참여할 태세다. 수신료 관련 논거 중의 하나가 방송 공공성 강화이다. 편파 보도 논란이 이어진 KBS·MBC가 그동안 시청자의 자유 증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방역이 강화되고 있다. 사람들의 동선은 관리되고 있다. 수집한 개인 정보를 잘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성 착취물을 공유한 n번방 주범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한 이는 공익근무요원이었다. 공공성의 가치는 개인과 사회의 자유를 지키고 보장하는 가운데 달성돼야 한다. 공공정책이 개인과 사회의 자율성을 종속시킨다면 그것은 공공선의 증진이 아니라 국가주의(statism)의 실현이다.
둘째, 공공성 증진을 위한 의사결정에는 심의와 참여·소통이 필요하다. 참여를 위한 참여, 특정 진영 일색의 참여는 자의적 운영에 불과하다. 성찰과 논쟁·소통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소통의 정당성은 다수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설득력에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화 시대’에는 세력과 진영이 아니라 합리와 상식이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언론은 진영 논리에 포획돼 있다. 신문과 방송의 정파적 진영 논리는 치열하다. 유튜브 채널은 더하다. 이런 식이라면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여권에서 제안한 전·월세 연장법안은 어떠한가. 세입자가 원하면 무기계약도 가능하다. 그런데 집주인의 이익을 보호할 방법은 제한적이다
집주인을 옥죄는 전·월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전·월세 법안이 공공성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주택 소유자의 입장도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소통의 원리이다.
종부세 같은 세금 인상에 앞서 상호 소통과 설득이 필요하다. 실소유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본소득제는 어려운 계층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세금 부과로 다른 계층의 인간다운 생활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세금을 내는 사람의 희생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 모색 과정도 필요하다. 공공성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정신이다. 공존을 위해서는 수평적·협력적 신뢰 관계가 구축돼야 한다. 지금의 공공성 논의에는 성찰과 소통·설득이 부족해 보인다.
셋째, 공공성 논의는 권력의 사유화(私有化)를 경계해야 한다. 공화제는 법원·검찰·감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언론·통계청·중앙은행 등이 헌법과 직업윤리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체제이다. 이들 기관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인 권위를 가져야 한다. 정치권력이 이들 기관의 공적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면 그것은 공화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검찰 등 헌법 기구, 실질적 독립성 확보해야
공공성 논의는 또 집단주의를 유의해야 한다. 공화주의는 모든 사람이 법치 안에서 차별받지 않는 체제이다. 역대 권력은 집단적·봉건적·진영적 통치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측근과 친인척을 감싸는 관행이 만연했다. 봉건적이라는 것은 지배세력 안의 잘잘못은 크게 따지지 않는 운명공동체 관행이 통용되는 것을 지칭한다. 윤미향·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봉건적 통치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김경수 경남지사와 송철호 울산시장,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관련 재판과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에도 이런 봉건적 관행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친문(親文)은 처벌받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있다면 지금의 공공성 논의는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공공성 논의에 진영 논리가 있다면 공화주의로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 논의가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공공적 특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자유의 내용을 사회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도 숙의와 토론·소통이 필요하다. 언론의 편향성 논란은 소통과 숙의를 막는 장애 요인이다.
독립적 권위를 가져야 하는 헌법 기구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은 사유화된다. 지배체제 안에 봉건적 집단체제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총선 이후 각 분야에서 쏟아지는 공공성 강화 논의는 이상의 논점들을 충분히 검토한 가운데 진행돼야 한다.
지배층의 특별 대우 인정하는 중국 지배체제
중국의 봉건제는 주나라(기원전 1000년~기원전 256년)에서 시행됐다. 봉건제는 지배층이 상호 연대해 피지배층을 통치하는 것이다. 주군과 제후는 상하 관계이며, 각자 독자적인 통치권을 갖는다. 『논어』 ‘미자(微子)편’ “군자불시기친(君子不施其親)…고구무대고 즉불기야(故舊無大故 則不棄也)”는 봉건체제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군자는 (지배층의 일원인) 친족(또는 제후)의 죄를 묻지 않으며…원로 중신은 큰 잘못이 없으면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논어역평』의 저자 조명화와 『청강해어 논어·노자』의 저자 권성은 시(施)를 ‘죄를 묻다’로 해석한다. 이 말은 봉건제 군주가 봉건체제를 유지하는 목적과 수단으로써 제후나 친족·가신을 법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이들이 죄를 짓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특별 대우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봉건적 통치 관념에서 보면 법률이란 피지배층을 통치하는 수단이지, 지배층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봉건적 질서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무너지고 진나라(기원전 221년~기원전 206년)에서 중앙집권체제가 등장했다. 지금의 중국 집단주의적 지배체제에도 봉건제적 특징이 있다. 중국의 국가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7인의 상무위원이 있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집단지도’(集體領導)와 ‘역할분담’(個人分工)이 결합한 통치제도이다.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822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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