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아름다운 대선’을 위하여

<김형준/국민대 교수>

유례없는 여당의 대참패로 막을 내린 5·31 지방선거의 후폭풍으로 정계개편 움직임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 대선 게임의 경험적 법칙에 따라 향후 정국을 전망해보면, 우선 정계개편 방식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간에 연대론과 소신론이 충돌하면서 균열이 증폭될 개연성이 크다. 연대론자들은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민주당을 포함한 개혁 민주 세력과 연대해서 반한나라당 세력을 규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친노 그룹이 주축이 된 소신론자들은 민주당과의 통합은 ‘도로 민주당’을 지향하는 지역주의의 회귀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고건 전 총리-우리당-민주당-국민중심당을 결합하는 ‘범여권 서부벨트 연대’도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대통령의 소신과 우리당 창당 정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청간 갈등이 심화되면 될수록 고전총리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는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이미 고전총리는 중도 실용주의 세력 대통합을 위한 ‘국민희망연대’ 구성을 추진하기로 밝혔다. 당·청간 감정 대립이 심화되면 연대론에 찬성하는 우리당 일부 세력이 고전총리측에 동참하고 여기에 민주당이 합세하여 본격적인 고건발 신당 창당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우리당 탈당은 필연적으로 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주도권 잡기 정계개편 꿈틀-

한나라당도 7월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친박근혜-친이명박-소장파 개혁세력’간에 대권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물밑 세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특히 지방선거 후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이명박 시장측은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공정한 경선을 내세우며 경선 방식과 경선 시기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20% 여론조사 반영률을 대폭 확대하고, 전당대회 시기도 대선전 180일에서 최대한 늦출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선에 동참하지 않을 개연성도 존재한다. 이시장은 상황에 따라 당내 경선 대신 독자 세력화를 추진한 다음 대선에 임박해 박대표와 후보 단일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로만 보면 한나라당의 압승이지만 과정의 측면에서 보면 모두가 패배한 선거였다. 한나라당은 미래를 위한 비전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 승리한 것이 아니다. 무능하고 오만한 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무기로 반사이익만을 챙긴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박대표 피습사건으로 정책은 실종되고 동정론만이 판을 쳤다.

지역사회 비전과 이슈를 중심으로 유능한 지역일꾼을 뽑아야 할 지방선거가 중앙정당의 대리전으로 왜곡되어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 대신 정당만을 보고 선택하는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여야 정치권은 정계개편을 논의하기 전에 이러한 왜곡된 선거 과정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에서 3번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선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와 개혁을 통해 진정한 대안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지 않기 위해 모든 대권 후보가 합의할 수 있는 경선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교의 꼼수정치가 아니라 길게 호흡하면서 강한 행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정책의 경쟁 이뤄져야-

노대통령도 “선거에 한두번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오만한 사고를 버리고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노대통령은 자신이 정계개편을 주도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공정하고 중립적인 대선 관리를 위한 현명한 길을 찾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오로지 대선 승리만을 위한 세속적이고 허황된 새 판짜기에 몰두해서는 안된다. 차기 대선에서는 지역, 야합, 감성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정책, 이성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