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정책설문 ‘그들만의 여론조사’ / 홍성걸 (행정)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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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인터넷 여론조사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조사 과정에서 현 시점까지의 응답 결과를 실시간에 공개함으로써 미처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쯤 되면 온라인 여론조사가 존재하는 여론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라는 행위를 통해 여론을 형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정보통신 1등 국가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정보격차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회원들만 응답할 수 있도록 한 어느 인터넷 신문의 여론조사 응답자들의 배경 변인을 보면 정보이용격차에 따른 여론의 왜곡 가능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약 3주간의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조사에 대한 응답자의 90%는 남자이고 70%가 30, 40대이며 50% 이상이 서울 거주자이다. 이러한 응답자의 특성은 설문의 내용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특정 집단의 견해나 이해가 온라인 여론조사에 과도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온라인 여론조사의 결과를 정책 결정 과정에 참고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특정 정책 이슈에 남다른 관심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견해가 무관심한 다수의 견해에 비해 더욱 정확하고 옳은 판단일 수도 있다. 또 온라인 조사를 통해 단기간에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면 온라인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불균등한 참여에 의한 온라인 여론조사의 결과는 참고자료라면 몰라도 정책 형성의 과정에 직접적으로 반영해서는 안 된다. 온라인 여론조사를 할 때는 반드시 조사 결과의 왜곡이나 조작 가능성을 경고하는 문구를 삽입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회원제를 통해 로그인한 후에만 응답할 수 있도록 하고 응답자의 배경 변인을 공개함으로써 과학적 여론조사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정치와 행정 분야 등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 결정과 관련된 참여에 대해서는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을 신중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과거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던 누리꾼들도 최근에는 익명성에 따른 부작용의 심각성을 깨닫고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사회 전체의 이해와 직접 관련된 정치행정 분야의 이슈에 대해 실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을 존중할 이유가 크게 희석될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 여론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누리꾼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도 온라인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완화할 대안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여론조사를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누리꾼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이 궁극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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