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50층 아파트를 반대하는 이유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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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대로 아파트 층수 제한이 풀릴 전망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국토교통부가 도심에 50층 아파트를 허용하는 공급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는 일반주거지역의 아파트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 기준이 있는데 정부가 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이 부재 중인 서울시의 저항이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왜 초고층 아파트를 반대하는 것일까. 도심에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자는 데는 이의가 없다. 실제로 서울의 용적률은 경기도 분당·일산 등의 신도시보다도 낮다. 경제, 교육 여건, 교통, 기타 인프라 등이 잘 갖춰진 도심에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한다는 결정은 늦은 감마저 있다. 다만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층수를 높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50층 초고층 아파트는 지나치다. 용적률이란 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이다. 100평 땅에 각층 면적이 50평인 10층 건물을 짓는다면 용적률은 500%가 된다. 국토부가 50층으로 도달하려는 용적률은 250% 내외다. 이를 위해 50층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한 층의 바닥면적이 고작 5%이다. 마치 이쑤시개를 꽂아 놓은 듯한 아파트 단지가 되는 것이다. 땅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나머지에 녹지를 조성해 쾌적한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순진한 이상이며, 역사에 대한 무지다. 이는 인류가 지난 세기 동안 실험을 통해 실패로 결론 난 시도이다. 1933년 당대의 거장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는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빛나는 도시’라 이름 붙여진 계획안은 불결한 프랑스 파리의 거리와 골목을 밀어 광활한 녹지로 만들고, 건폐율이 10%가 안 되는 초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것이 핵심이었다. 도로는 입체로 만들어서 녹지 공간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것도 포함됐다. ‘빛나는 도시’는 그대로는 한 번도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녹지 위 초고층 아파트라는 핵심 아이디어는 미국과 아시아의 도시 곳곳에서 실험됐다. 조감도는 이름처럼 빛났지만, 실재는 참혹했다. 초고층 아파트는 필연적으로 자동차 중심의 생활양식을 강요했다. 걷는 이가 없으니 이웃도 없어지고 상가는 썰렁했다. 녹지는 관리가 안 돼 폐허로 변했고 범죄가 만연한 우범지대로 변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리 대신에 들어선 녹지에서는 물자와 지식의 교환, 만남의 공간이라는 도시의 본질적 역할이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1974년 ‘빛나는 도시’로 지어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아파트 단지가 범죄와 마약으로 준공 8년 만에 폭파 해체되는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다. 걷는 거리와 저층고밀을 강조하는 뉴어버니즘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전통적인 도시회복 운동을 이끌었던 미국의 제인 제이콥스는 활발한 거리가 ‘자연감시’ 기능이 있어 이웃을 만들고 범죄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초고층 아파트는 수직의 전원을 만드는 일이어서 거기엔 이웃도 자연감시도 없다고 단언한다. 잘 알려진 대로 파리 구도심의 용적률은 300%가 넘지만, 최고 층수는 7층이다. 층수는 낮추고 밀도는 높이는 저층고밀이다. 물론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후가 다른 파리와 서울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생활양식이 서구와 다를 바 없고 냉난방 설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급이 됐다.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7층과 50층은 그 정도가 심하다. 그보다는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현실과 맞지 않거나 도심 주거에 부적합한 요구를 강제하는 법령을 정비해서 도심의 장점을 살리는 저층고밀의 아파트 건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저층고밀의 도시적 분위기가 낯설다면 판교 테크노밸리, 마곡지구, 문정지구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역설적으로 공항고도 제한 때문에 초고층으로 올리지 못해서 활기찬 분위기의 도시 공간이 만들어진 곳들이다. 도심의 주거도 다르게 지을 이유가 없다. 이웃과 교류하는 진정한 도시 주거로는 35층도 높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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