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15분 도시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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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도시는 위기였다. 저렴한 가격과 주차장으로 무장한 대형마트가 상점을 하나둘씩 삼켰고 동네 상권은 비틀거렸다. 거기에 인터넷 상거래가 잠식해 위기가 고조되던 참이었다. 집에 앉아 물건을 고르면 빛의 속도로 현관 앞까지 배송해주는 편리함이 위기를 재촉한다. 진짜 위기는 코로나 이후에 온다. 비대면 원격 업무나 수업이 생각보다 효과적이었고 거부감이 줄면서 과연 10년 후에도 도시에 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도시는 살아남을 것이다. 소통과 교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고 그 배경이 되는 도시는 인류가 생명을 이어가는 한 지속할 것이다. 도시는 탄력적이어서 모습을 달리하며 새로운 사회환경에 적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의 대도시 인구가 다소 감소했으나 중소도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향후 도시의 방향을 시사한다. 분산된 도시 조직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15분 도시’는 가장 적합하고 바람직한 개념으로 보인다. 장시간의 끔찍한 출퇴근 없이 도보나 자전거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생각이다. 종래의 근대 도시가 용도별로 지역을 나누고 교통망으로 잇는다는 개념에 대비되는 도시 디자인 접근법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세계적 대도시 협의체인 ‘도시 기후 리더십 그룹(C40)’은 15분 도시를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한 기본계획(Blueprint)으로 격상해 발표했을 정도다.
15분 도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정한다. 둘째는 주거, 학교, 소기업, 의료, 상점, 그리고 여가시설 등 주민들이 그 안에서 완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지난날 우리의 마을에 해당하는 공동체를 회복하고 자동차 의존을 줄인다는 것이다. 셋째로 단독·연립주택, 아파트 등 다양한 주거 유형을 제공해 선택의 폭을 넓히며 상생하는 사회적 통합을 이룬다. 다른 특징은 15분 도시에서는 건물이 복합적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다. 재택근무로 수요가 줄어든 사무실을 주택으로 재배치하거나 학교나 공공건물은 일과 후에는 주민 복지와 여가를 위한 용도를 겸한다.
15분 도시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 등이 주창해 세계 여러 도시가 채택했다. 공동체 가치를 우선시하고 다양한 주거와 교통의 형태를 인정하는 포용적 상생 정책 방향이어서 근대 도시계획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도시라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다. 캐나다 오타와가 이를 공식화했고 호주 멜버른과 미국 디트로이트는 범위를 확장해 ‘20분 도시’를 장기전략 발전계획으로 삼았다. 대표적으로 지난 6월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이 재선에 도전하며 공약으로 내건 ‘파리를 위한 선언’의 부제가 ‘15분 도시’였을 정도다. 모레노 교수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동차와 전쟁을 치르거나 15분 거리마다 루브르를 지을 필요는 없다. 대중교통을 위한 선택지를 추가하고 도시 구석구석의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40 도시들 산하 탄소제로센터의 헬렌 샤티에르는 “일상생활을 걷기와 자전거로 해결하는 15분 도시는 대형마트 대신 도시 거리의 지역 소매상권을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며 강력하게 지지한다.
어느새 서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통근 시간이 가장 길며 1인 자동차로 통근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됐다. 동네 상권이 붕괴되고 획일적으로 아파트와 대형마트가 황량한 풍경을 만드는 도시 아닌 도시가 됐다. 서울을 15분 도시로 선언하고 시민의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1시간 내로 줄여주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시장 후보가 있다면, 그래서 나와 이웃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면, 정당을 떠나 그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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