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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고층 빌딩에서 농사 짓고, 옥상에는 호수 만들고… / 장윤규(건축학부) 교수

 

자연을 닮은 인공생태계 구축이 현대 건축계의 주요 흐름으로 떠올랐다. 영국 건축가 그림쇼의 에덴 프로젝트. 황폐한 채석장을 식물원으로 만들었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 마크(맷 데이먼)는 화성 기지에 홀로 남아 감자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는 인분을 비료로 쓰며 어렵게 생존을 이어간다. 화성의 평균 기온은 약 영하 63도. 대기 또한 희박하다. 반면 기지 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로 지구의 33%는 사막으로 덮여 있다. 사막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인공물로 가득한 대도시, 사막 같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인공 생태 시스템을 설치해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주거와 업무, 그리고 먹거리 통합
대학 캠퍼스에 계단식 농장 등장
버려진 채석장엔 돔 모양 식물원
인공생태계 조성, 선택 아닌 필수

 


네덜란드 건축가그룹 MVRDV의 피그 시티. [사진 각 건축사무소]  


.네덜란드 건축가그룹 MVRDV가 선보인 ‘피그 시티’(Pig City)는 이러한 설정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프로젝트다. 고층 빌딩 건축 시스템과 돼지 사육공간, 놀이공간, 레스토랑 등을 결합했다. 가축을 배려한 발상이 눈에 띄는데, 갈수록 척박해지는 현대 사회에 유용하게 원용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최근 떠오르는 수직농장과 일맥상통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딕슨 데포미에 교수가 제시한 수직농장은 실내 농경을 수직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도시에서 식량 자급자족 모델을 구현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 SOA 건축이 제안한 ‘리빙 타워’(Living Tower)는 인공자연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무·주거공간이라는 채워진 공간과 농산물을 경작하는 비워진 공간을 수직적으로 구성한 자족적 빌딩이다. 농작물 경작과 일상 활동을 수직으로 통합했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는 한편 도시와 교외 지역 간의 교통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에너지 절약 효과가 상당하다. 농산물 생산지와 소비지, 우리의 거주지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자율적인 인공 생태계인 셈이다. 
    
현실로 다가온 영화 ‘마션’의 상상력 
  
21세기 건축은 인공과 자연의 공생을 통한 새로운 환경 구축에 관심이 많다. 랜드스케이프 건축, 에코 건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풍경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을 주목하는 편이다. 이제는 자연을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닌 인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도시와 건축·자연을 통합하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2000년 독일 하노버 엑스포에서 공개된 네덜란드관. 자국의 자연환경을 끌어들였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이런 측면에서 2000년 열린 독일 하노버 엑스포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아이디어가 빛나는, 다양한 형태의 미래 인공 생태도시 모델이 선보였다. 특히 MVRDV의 네덜란드관(Dutch Pavillion)은 식물의 새로운 인공 환경을 실현했다. 자국 곳곳의 자연환경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수직으로 쌓아 올린 랜드스케이프 건축을 제시했다. 인공적이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닮은, 전에 볼 수 없던 시도다. 
   
구체적으로 맨 아래층 공간에는 작은 동굴과 모래언덕 등을 만들었다. 그 위층에는 노란색 화초와 각종 식물이 놓인 테이블을 일렬로 배열했다. 또 그 위층에는 초대형 나무 화분을 옮겨놓은 것 같은 숲을 조성했다. 네덜란드의 자연 공간을 재현한 셈이다. 
   


미국 건축가 라슨의 옥상 농장. 대학 캠퍼스 지붕을 계단식 농장으로 꾸몄다. [사진 각 건축사무소]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건물 맨 꼭대기에는 호수와 옥상정원, 발전용 풍차 등을 배치했다. 방문객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자연에서 가져온 물과 에너지, 숲과 모래언덕 등의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단순히 소규모 생태계를 꾸며놓는 데 그치지 않고 자족적인 환경 시스템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빗물을 식수로 전환해 사용하며, 옥상의 바람으로 풍력 발전기를 돌린다. 꼭대기 층의 호숫물은 커튼 형태의 거즈를 타고 내려와 나무의 뿌리까지 도달한다. 물과 빛, 에너지와 시간의 절감을 실현한 획기적인 건축이다. 
   
미국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가 고안한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구면에 가까운 형태로 만든 다면체)은 인공 생태환경을 만들어내는 데 유용하다. 영국 건축가 니컬러스 그림쇼가 이에 착안해 2001년 잉글랜드 남서부 데본에 원예 에덴 프로젝트를 실현했다. 버려진 채석장에 귀중한 표본과 식물을 보전하는, 마치 우주선 같은 환경을 조성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점토 구덩이에 여러 크기의 육각형으로 이뤄진 돔(바이옴)들을 들여놓으며 새로운 형태의 자연 서식지를 창출했다. 
   
하이테크 건축가로 유명한 그림쇼는 공간과 재료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각각의 바이옴은 일조량을 비롯해 특정 식물들에 최적화한 환경을 갖추게 했다. 또 가볍고 작으면서도 쉽게 운반할 수 있는 강철 튜브 및 조인트로 바이옴을 완성했다. 돔을 덮는 패널은 투명하고 가벼운 고성능 재료 ETFE 포일로 마감했다. 
   
중국의 투런스케이프 팀이 선보인 경작 랜드스케이프 또한 눈길을 끈다. 쌀을 경작하는 논을 중국 선양(瀋陽)의 대학 랜드스케이프로 이용했다. 현대 건축에서 조경은 감상용 대상이 아니다. 직접 농사까지 짓는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 건축가 매그너스 라슨은 태국 탐마삿 대학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2만2000㎡에 달하는 도시 옥상농장을 제안했다. 라슨은 태국 전통의 계단식 논을 모방했다. 지역의 독창성을 농장 건축에 끌어들인 것이다. 빗물을 농작물 경작에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각 토양층을 거치며 여과된 물은 나중에 저수지 네 곳에 저장된다. 시간당 50만 와트를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도 구비했다. 그 전기 에너지로 물을 다시 끌어올려 옥상농장의 관개용수로 재활용한다. 
    
도심에는 산소 공급하는 ‘에어 트리’ 
  
도시의 작은 단위로서의 인공 생태환경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페인 건축가 그룹 에코시스테나는 자연의 나무를 대체하는 인공 구조물 ‘에어 트리’(Air Tree)를 길가에 설치했다. 인공 나무인 에어 트리는 도시 공기 상태를 조절하는 인프라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분해도 손쉬운, 가벼운 구조다. 쓰고 남은 에너지를 주변 지역에 판매하며 시설물 유지 관리비로 사용한다. 
   


도시와 자연을 유기체처럼 얽은 부산 에코텔라 스카트 빌리지 개념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주민이 직접 농산물도 키운다. [사진 운생동건축]  


.인공 생태환경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시의 새로운 환경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필자가 소속된 운생동은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스마트 빌리지를 제안했다. 자연과 도시가 얽혀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생태계다. 제로 에너지 개념을 기반으로 도시농업, 거리 온실, 스마트 헬스케어 등을 한데 묶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각 가정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재활용과 폐기물로 구분하고, 개별 쓰레기는 로봇이 수거한다. 단지 내 커뮤니티 카페에선 로봇이 음료를 제공하고 서빙까지 맡는다. 입주민들은 스마트팜에서 채소·토마토·감자 등을 키워 먹을 수 있다. 이처럼 자급형 도시 생태계는 단순한 상상이 아닌 구체적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 점령이란 기존의 생활방식으로는 우리의 안정된 삶을 더는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족관 들어있는 도시 농장

 

도시 농장 유리돔  

 

.도시농업이 활발해지면서 컨테이너 팜(Container Farm)이 주목받고 있다. 사각형 컨테이너에 작물 재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접목한 실내 농장이다. IT기술을 접목, 자동 원격 제어한다. 면적·노동당 생산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스카포니가 디자인한 도시 농장 유리돔(사진)은 컨테이너 팜을 확장했다. 이동과 설치가 손쉬운 형태로, 특정 건물의 옥상에서도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기를 수 있게 고안했다. 돔의 가장 아랫부분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수족관이 있고, 이곳에서 나온 배설물을 농작물의 비료로 이용한다. 또 수직으로 쌓인 밭의 흙이 수족관 물을 다시 정화한다. 자연 생태계의 순환을 모방했다. 삼각형 대나무 구조가 독특한 모양의 돔을 구성한다. 
  

장윤규 국민대 교수·운생동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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