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北에 별 관심 없어… ‘전략적 인내’ 노선으로 회귀할 것” /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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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북한 역사와 체제 연구에서 분수령이 되는 논문과 저작을 다수 내놓은 세계적 학자다. 러시아인으로서 남한의 대학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독특한 삶을 14년째 살고 있다. 란코프 교수의 학문적 업적은 많은 부분 개인적 노력과 지적인 탁월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광복 후 북한 정권 수립과 김씨 일가의 권력 공고화에 지대한 역할을 한 러시아(구소련) 출신이라는 점, 북한 김일성대에서 수학한 독특한 경험, 광범위한 해외 연구 네트워크와의 연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란코프 교수는 학계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핵 보유는 북한 입장에서는 합리적 결정으로, 전면적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 왔다.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 연구실에서 란코프 교수를 인터뷰했다.
-내년 1월 출범할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일단 궁금하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북한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먼저,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투표자의 47%가량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등 정권의 기반이 그리 탄탄하지 않다. 그래서 바이든은 최소한 집권 초기에는 대외 정책보다 국내 정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코로나 대확산과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인종 간, 도시-농촌 간 대립, 불평등 문제 등 국내 현안 해결에 일단 매달려야 할 것이다. 게다가 대외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북한은 뒤로 밀릴 것이다. 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외교통이다. 그는 북한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 만병통치약이 없는 난제인지 잘 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계에서 예외적인 사람이다. 바이든은 그것이 환상이라는 걸 안다.”
-바이든이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국무장관으로 내정한 것도 그런 포석인가.
“현 단계에서 장기적인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블링컨이 오바마 행정부 때 ‘전략적 인내’ 정책의 입안과 실행에 참여한 사람이라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바이든이 정책을 유턴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가까운 미래에는 아니다. 최소한 내년에는 전략적 인내가 미국의 대북 전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북 제재에 계속 매달릴 것이라는 얘기인가.
“크게 보면 그렇다.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타협이 불가피하며 제재 완화도 당연히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얘기를 경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북 제재가 큰 효과가 있고 북한이 결국 이에 굴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대북 제재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거리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쌀값과 환율이 급변동하는 등 이상 징후가 있다고 하지 않나.
“북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환율이나 쌀값의 변동성이 예전보다 커진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정도는 결코 아니다. 비유하면 다리가 아파 생활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직장인 같은 것이다. 다리가 아프지만, 이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정도는 아니다. 대북 제재 효과를 가늠할 때 중국의 존재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중국은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벗어나 식량과 원유 등 북한 체제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를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하면 할수록 현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걸 보고 있을 수 없다. 중국에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 어떻게 대응할까.
“전략적 인내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사실 김 위원장은 훨씬 자신만만해졌다. 패권 경쟁으로 비화한 미·중 대립은 북한에 이로운 정세 변화다. 중국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도록 기초적 자원을 계속 지원할 것이다. 하지만 인민들에게 경제 성장의 과실을 맛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김 위원장으로서는 대북 제재가 연장되면 이러한 희망을 접어야 한다. 현 대북 제재 시스템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바이든 정부의 무관심과 무시를 깨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바이든을 움직이게 하려고 군사 도발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내년 초 바이든 취임식 후 도발에 나설 것으로 본다. 다만 핵실험은 중국을 매우 화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꺼림칙한 수단이다. 이미 완성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형’, 아니면 지난 10월 10일 열병식에서 모형을 보여준 ‘화성 16형’ 발사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아직 알 수 없는 것이 중국의 태도다. 핵실험만큼은 아니지만, ICBM 발사도 중국이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자제하도록 북한에 압박을 가할 것이다.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유례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에서 중국이 얼마나 압력을 가할지, 이것을 북한이 얼마나 견딜지 관심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희망이 없는 것인가.
“청와대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길 바라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아마 실패할 것이다. ‘북한을 포용하자. 그러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는 주장한다. 미국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이런 논리에 관심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7월 도쿄올림픽 때 남북 및 미·일 정상이 만나 북핵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외에는 참여할 정상이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은 광범위한 백신 배포 등으로 코로나19가 완전히 잡히지 않는 한 도쿄를 방문하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시대 미·중 관계 전망은.
“미국에 반중(反中) 전략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때보다 조금 부드럽게 중국을 대할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상당수 한국인이 미·중 간 대립을 자유민주주의(미국) 대 권위주의(중국) 같은 이념의 차이 때문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오해다.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이 지금의 미·중 관계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용어다.”
-격화하는 미·중 대립이 한국과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이 대결한 제1차 냉전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다. 미국의 패권 아래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성공 사례다. 하지만 미·중이 대결하는 제2차 냉전 시대엔 매우 힘들고 곤혹스러운 환경에 처할 것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이 이제는 불가능하다. 중국은 미국의 동맹체제에 훨씬 공격적인 자세를 보인다. 중국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한·미동맹이 그나마 나은 선택인 것은 맞는다. 중화민족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패권은 훨씬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동맹 체제를 지속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쩌면 한국엔 최선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찾는 어려운 선택만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싫겠지만 쉽고 편했던 미 패권 아래의 30여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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