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 막는 ‘대북전단금지법’[동아 시론/안드레이 란코프] /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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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남북관계 경색 회피용 법안… 민주주의 위배에 국제사회 비난 직면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이 법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이 법에 대한 비판을 내정간섭이라 주장하는 집권당의 태도는 이중잣대의 대표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해외의 비판에 한국의 ‘특별한 상황’을 소개한 다음 이러한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을 민주화운동 계승자로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같은 선전을 하는 것은, 교과서에서도 찾기 어려운 ‘더블 스탠더드’가 아닐까?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시각에서도 전단금지법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첫째로 이 법을 제정함으로써 한국은 파렴치한 협박에 굴복한 셈이 되었다. 둘째, 이 법이 조문 그대로 실시된다면, 바람직한 북한의 변화는 가로막힐 것이다.
또 이 법의 제정은 북한의 변화를 어렵게 함으로써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 현 정부는 남북 평화공존을 원한다고 수십 차례 밝혔다. 그런데 평화공존은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경제성장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북한의 변화를 불러올까? 옛 공산권의 경험을 보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산권 국가들이 1980년대 말 시대착오적인 계획경제를 포기한 기본 이유는 이 체제의 낮은 효율이다. 그러나 공산권 인민들은 이미 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아주 심각했다. 이유는 그들이 외부생활을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어려운 일상생활을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장경제 민주국가 국민의 생활과 비교하고 있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이유 중 하나도 외부 지식이다. 1970년대 말 중국 간부들은 대만과 한국의 빛나는 성공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고도성장의 유일한 길이 개혁개방임을 인식했다.
동유럽 인민들이나 중국 간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외부 생활을 배울 수 있었다. 해외 출장, 서방 영화와 소설 보기, 외국인 방문객 접촉 등을 통해서다.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외국 방송 듣기, 밀수입된 금서나 외국 도서를 읽는 것이었다.
북한은 옛 공산권 국가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주민을 심하게 감시, 통제하고 있으며 외국인 방문객, 외국 영화, 외국 출판물도 거의 없는 ‘쇄국 사회’다. 주민뿐 아니라 간부 대다수도 외부를 거의 모른다. 그래서 대북방송·전단 같은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전단금지법에 따라 대북전단 풍선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도서, USB, 간행물 등 정보를 전달하는 것까지 모두 처벌 대상이 됐다.
북한 주민들과 중하급 엘리트들은 외부 생활을 알게 될 때에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상부 엘리트가 무시하기 어려운 압박으로 작용하고, 북한을 변화의 길로 끌고 갈 잠재력이 될 것이다. 이 변화가 북한의 붕괴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북한이 개혁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때에만 장기적인 남북 평화공존이 올 수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단기적으로 긴장 고조를 회피하는 방법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북한 민중의 생활 개선도, 평화 공존도 어렵게 만드는 법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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