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결은 불가피
한반도에서의 미·중 대리전도 가능
“균형외교”는 환상
한미동맹만이 정답
서욱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이 격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월 18일과 19일 사이에 개최된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국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과 블링컨 국무장관, 중국의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 간의 ‘2+2 회담’에서 양국은 제반 현안에 대하여 상당한 견해차를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감정적 충돌까지 표출하였다. 중국의 양제츠 정치국원은 약속된 시간을 훨씬 초과하면서 미국을 비난했고, 그러자 미국도 중국을 비난하게 되었으며, 결국 모두 발언이 한 시간을 초과하게 되었다. 양국은 만찬 등의 일정도 취소하였고,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한 채 회담을 마쳤다.
솔직한 의견 제시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서로의 실체를 잘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 대한 중국이나 미국의 여론을 보면 양국은 감정적 기싸움이 적정선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여론은 양제츠가 미국을 비난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미국의 감정 분출을 쇠퇴의 증거로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링컨 장관의 강력한 대응에 대하여 자랑스럽다고 평가함으로써 대결의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만만하게 보면서 도전할 경우 양국의 대결은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미·중 대결은 불가피
국제정치 이론을 적용해보더라도 미·중 간의 대결은 불가피하다. 오간스키(F. K. Organski)라는 학자가 1958년에 발표한 ‘세력전이(轉移)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에 의하면 패권국에게 도전하는 국가가 발생할 경우 새로운 패권국을 가리기 위한 전쟁이 불가피해진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미국도 이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미국이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을 겪음에 따라 세력전이의 속도가 빨라진 점도 없지 않다.
저명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들도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을 예상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미어세이머(John A. Mearsheimer) 교수는 2001년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미·중 간의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하버드 대학의 앨리슨(Graham Allison) 교수도 2017년 『전쟁으로 운명지워지다: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회피할 수 있을까(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라는 제목의 책을 통하여 미·중 간 전쟁은 불가피하다면서 그래도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을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의 원인, 홍콩 보안법, 신장 위구르인에 대한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고, 남중국해, 타이완, 북한 등과 관련해서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알래스카 회담에서 보듯이 코로나-19의 피해를 별로 입지않은 중국은 미국을 만만하게 보면서 도전을 서슴지 않고 있고, 미국의 자존심도 적지 않게 상처를 입은 상태이다.
한반도에서의 미·중 대리전도 가능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대리전쟁(proxy war)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대리전쟁은 강대국들이 그들 간 대규모 전면전이 지나치게 위험하거나 부담스럽다고 판단할 때 약소국들로 하여금 대신 전쟁을 수행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시각에 따라서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우크라이나분쟁,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은 모두 대리전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1950년에 북한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공격한 6.25전쟁도 미국과 소련·중국 간의 대리전쟁으로 인식된다.
현재의 한반도는 미·중 대리전쟁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미국은 한국과 동맹관계이고, 중국은 북한과 동맹관계로서 자기 진영이 정해져있고, 특히 북한이 무력을 통한 통일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리전쟁을 구상하여 북한을 부추기면 금방 한반도는 미·중 간 대리전쟁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중국이 사주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결국 미국은 한국을, 중국을 북한을 지원하게 되어 대리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북한은 현재 핵무기는 보유하고 있지만 경제나 체제안정 차원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있어서 도발의 동기가 적지 않다. 유엔의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핵무기를 포기할 수는 없으며, 결국 남한 병합 이외에는 체제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단독으로 도발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으나 중국과 상의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전쟁은 미·중 간 대리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균형외교”는 환상
상황이 이와 같이 심각함에도 한국의 현 정부는 너무나 한가하다. 북한의 핵위협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 같고, 미·중 간 대결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중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하고 있다. 말은 “균형외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친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즉 현재 한국이 지향하고 있는 외교의 기본은 연미화중(聯美和中,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 또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인데, 이것은 개념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결국 친중외교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중국 언론에서 며칠 전에 보도했지만, 중국은 한국을 이미 장악하였다고 판단하여 안하무인으로 무시하고 있고, 미국은 한국이 과연 미국과 동맹의 이익을 함께할 것인지를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18일 있었던 한미 외교 및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은 친중과 한미동맹 경시의 속내를 다 노출하였다. 그 회담의 공동성명을 보면 온갖 미사여구가 기술되어 있으나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사항에 합의한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 중국과 북한의 인권문제 등 필요한 입장은 전혀 언급하지 못하고 있고, 한미연합훈련에 관해서도 결정된 내용이 없다. 아마 미국 대표들은 현 정부의 친중입장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고, 동맹으로서의 지속성 여부를 심각하게 회의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미일동맹은 너무나 견고해진 모습이다. 한국보다 이틀 먼저 열린 일본에서의 외교 및 국방장관 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보면 미국은 일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동북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질서유지를 위한 핵심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은 중국에 의한 강압과 불안정한 행동을 비난하면서, 항행과 비행의 자유,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함으로써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의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나아가 일본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불법적 주장과 활동을 비판하면서 홍콩과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까지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완전한 비핵화, UN의 결의안 준수, 그리고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였다. 일본은 미·중 대결에서 어느 쪽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를 분명하게 선택하였고, 미국 또한 중국이 센카쿠를 공격할 경우 동맹공약에 따라서 대응하겠다는 점을 약속하고 있다.
한미동맹만이 정답
책상에만 앉아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미·중 대결의 상황에서 한국은 가능하면 중립적인 자세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북한의 위협만 없다면 이러한 중립의 방향이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에 핵무기없이 대처하고 있어서 균형의 입장을 채택할 수가 없다.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없이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중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약속해주겠다고 제안한 적도 없다.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으로서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경우 오히려 북한을 지원할 것이다.
실제로 2010년 3월 북한이 한국의 군함인 천암함을 침몰시키고, 10월 한국의 영토인 연평도를 백주 대낮에 공격하였지만, 중국은 망설이지도 않은 채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였고, 거부권을 무기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을 제재하는 결의안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보다 2년 전인 2008년에 한국은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맺었고, 그것이 균형외교의 성과라면서 중국에 대하여 상당한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을 지원하기는 커녕 북한 편을 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은 ‘균형외교’와 같은 수사(修辭)와 환상, 그리고 그것을 미명으로 하는 친중정책에서 벗어나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이를 통하여 북핵 위협을 억제해야 한다. 균형외교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북핵 위협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이 친중정책으로 한미동맹을 약화시킬수록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미·중 간의 대리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자주국방 태세 필수
한미동맹을 강화함과 동시에 당연히 한국은 자주국방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미흡할 경우, 강대국들의 충돌 틈바구니 속에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침략을 억제할 수 있도록 군대의 전반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군사력 증강 속도를 높이며, 총력대비태세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북한에게 기습공격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키고, 오히려 정권의 파멸을 각오해야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켜 도발을 마음먹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서 한국의 재래식 군사대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미연합의 전쟁억제 및 방위태세 강화에도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핵전력을 가진 미군을 활용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북핵 억제방안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미 양국의 북핵 억제태세 완비에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이를 통하여 북한과 중국이 도발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즉 한미연합사령관을 한국군으로 임명하는 계획은 연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을 한미연합사령관으로 전환하면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미군대장인 한미연합사령관에게 한반도 전쟁억제와 유사시 승리를 위한 책임을 부여한 상태에서, 그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태세를 발전시키도록 만들어야 하고, 이로써 유사시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이제 한미동맹은 협조하는 것이 협조하지 않는 것보다 좋은 수준이 아니다. 한미동맹없는 한국안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유일하면서 절대적인 생존책이다. 자존심이나 반미감정을 운운할 때가 아니다. ‘균형외교’와 같은 비현실적 정책을 거론할 상황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한미동맹 이외에 우리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점을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글/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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