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파노라마] 근대기 상징물과 이미지 프로파간다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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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③_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교수
어쨌거나 서구의 디자인은 왕실과 귀족, 종교 권력이 향유하던 갖가지 상징과 제품에 근대기술을 성공적으로 접목함으로써 현대의 디자인 장을 열어갔다. 그 과정에서 전통기의 장식성은 계승과 거부의 길항적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왕실과 양반이 운영하던 국가가 패망한 조선의 경우 그들이 향유했던 상징적 문화마저 하대받게 된 것은 망국의 당연한 과정일 것이며. 이 지점에서 한국의 근대 디자인의 본질이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황실의 이미지 프로파간다 분당에 위치한 한국디자인진흥원 안에는 ‘근현대디자인박물관(디자인코리아뮤지엄)’이 있다. 박암종 선문대 교수가 평생 수집한 근대기 물품을 전시해놓은 곳으로 아직까지는 유일한 한국의 디자인 박물관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감정이 교차된다. 번듯하게 내놓을 만한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 듯하여 서구 박물관에 전시된 디자인 클래식이라는 것들과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의 물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대의 회오리치던 제국전의 한복판에서 작은 상징물을 통해서라도 그 현실을 감당하고자 했던 의지들이 묵묵히 전해져 온다.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는 말을 인정한다면 그 응전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한국의 근대 디자인을 살피는 작업이기도 하다.
1897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주체성을 새로 천명한 조선 왕조는 일본이나 제국이 황실 문양을 꽃으로 사용하는 것을 참고로 이씨의 상징인 ‘이화’에 착안해 황실문장을 제작하고, 이에 더해 태극과 매를 문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조선 황실의 문양 중 오얏꽃은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조선 황실 최초의 관비 유학생들이 만든 학회지인 『공수학보』(1907) 표지에도 태극, 건이감곤과 함께 오얏꽃이 등장해 황실에 대한 충정을 표현했다. 신소설 『자유종』(1910)에는 조선의 귀면, 태극과 함께 이화문이 사용됐다. 황실 건축물, 서류, 의상, 가구 등에 쓰이고, 일반인들에게는 개항기의 광고, 포장지, 로고 등에서도 사용되면서 조선 황실이 계획한 이미지 정치가 조금씩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 프로파간다는 제국의 권력 앞에서 힘없이 사그라드는 과정을 거친다.
화려한 제국양식의 형태미학 1905년 을사늑약 이후의 1907년 순종 즉위 기념 엽서를 보자. 시선이 또렷하지 못한 어린 순종은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있으며 익선관 위에는 비스마르크 재상이 썼던 철모자가 얹혀져 있어 독일을 추종했던 일본 메이지 천황의 영향이 보인다.
화려한 대제복을 입고 칼을 짚으며 독자를 바라보는 메이지 천황 밑으로 순종의 사진이 병치돼 있다. 이화문 장식은 늘어진 가지에 희미한 꽃송이로 산발적으로 그려져 있어 1901년의 황실에서 보여준 그 단아한 미와 섬세함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자연스러움이 그 당시에는 문명과 대척점의 열등성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이 대비 자체가 일본 제국의 이미지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은』. 사진=조현신
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교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디자인물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근대기 시각디자인문화사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문화사』가 있다. Tag#디자인파노라마#조현신#국민대#테크노디자인#근현대디자인박물관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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