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지속된 1차대전 악몽 되살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헤르손, 돈바스, 바흐무트에서의 치열한 대치·공방전
상호 불신으로 종전·휴전 모두 불가능한 우울한 새해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전쟁이 처음 발발했을 때만 해도, 누구도 이리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크리스마스 만찬을 함께 할 줄 알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긴가? 아니다.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의 첫해였던 1914년 이야기다. 1차 세계대전은 이후로도 몇 년이나 지속되다가 1918년 11월에나 끝났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1914년의 크리스마스 상황을 연상시킨다.
모두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야기된 국제적 불안정성을 생각하면 암울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전선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탈환했을 때만 해도, 파죽지세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크림반도를 곧 탈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헤르손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헤르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변했다. 러시아군의 철수 이후 우크라이나군을 환영했던 헤르손 주민들은 폭격을 피해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돈바스 지역은 어떤가?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군도 한 치의 땅을 더 빼앗기 위해 참호를 파고, 무차별 폭격을 하며,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 아조우스탈 공방전으로 유명했던 지난 여름의 마리우폴 전투만큼이나 치열한 전투가 바흐무트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휴전, 이런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측 모두 사상자도 많고 무기도 점차 고갈되어가고 있다면 적당한 시점에서 적당한 조건으로 평화협상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화협상을 위한 기회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지난 3, 4월만 해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평화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할 것 같은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측이 팽팽하게 군사적으로 대립한 가운데 협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참에 2014년에 빼앗겼던 크림반도까지 수복하겠다고 나선 반면, 러시아는 병합을 선포한 우크라이나 남부 및 동부 4개주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받으려 한다. 영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누가 보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합의가 어렵다. 우크라이나의 피해액뿐만 아니라 미국 및 유럽연합이 제공하는 전쟁 비용을 러시아가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및 서구 측의 입장이다.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자국의 전쟁 비용뿐만 아니라 전쟁 배상금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조건들이 상충하는 가운데 평화협상의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휴전협정이라도 할 수는 없는가? 안타깝게도 현 상태로서는 휴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휴전을 받아들일 경우 러시아군 점령 지역을 추후에 회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다. 반면 러시아 측은 휴전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도움으로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 것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없는 현 상태를 일시적으로나마 그대로 인정하는 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휴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맺어지려면 협상 당사국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구나 우크라이나가 현 러시아 푸틴 정부에 대해 이러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표명되었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과거의 민스크협정이 이행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우크라이나 정부나 서구를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민스크협정이 우크라이나군의 재건을 위한 시간벌기용이었다는 메르켈 전 독일총리의 언사가 최근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주변국으로의 확전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겨야 할 상황이다. 여느 때보다도 우울한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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