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격 피습, 기시다 내각 내리막길의 시작이었다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 |||
---|---|---|---|
[이원덕의 재팬 워치] 기시다 총리 연임 포기 배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변화의 첫걸음은 자신이 뒤로 빠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9월 하순에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통일교 관련 문제와 자민당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 등 국민 불신을 초래한 사태가 잇달아 발생했다”며 “자민당이 변할 것임을 보여주는 가장 알기 쉬운 첫걸음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는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중의원 해산의 시기를 저울질하며 어떻게든 지지율을 반등시켜 정권 연장을 꾀하려는 태세였기에 그의 갑작스런 재집권 포기 선언은 다소 의아했다.
기시다가 두손을 들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말부터 불거져 나온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이다. 자민당 아베파, 모테기파 등 주요 파벌이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이 뒷돈을 챙긴 의혹이 검찰의 조사로 낱낱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기시다파 역시 회계 책임자가 입건되었다. 내각 지지율은 급전직하했다. 그는 금권정치의 온상이라고 여겨졌던 파벌을 스스로 해체하는 극약처방을 내렸고 아소파를 제외한 자민당의 모든 파벌은 잇따라 파벌 해체를 선언했다. 또 정치자금규정법을 개정하는 등 정치개혁에 나섰지만 이반된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로 기시다 총리가 재임을 포기하게 된 배경은 사회·경제 정책의 실패에 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걸고 이른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실현을 공약했지만,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혼선을 거듭한 결과 그 성과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물가는 4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평균 실질임금은 오히려 뒷걸음을 쳤다. 저출산 대책으로 사실상의 증세를 시도하다 저항에 부딪쳤고 엔화 가치는 끝없이 추락했다. 국민등록제인 ‘마이넘버 제도’ 도입을 꾀했으나 행정의 난맥상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기시다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 정치에서 내각 지지율은 정권의 향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 3년간의 기시다 내각 지지율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전고후저’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10월 출범 직후 내각 지지율은 53%로 1년간 50%대를 유지하며 순항했다. 통일교와의 유착이 밝혀진 2022년 가을부터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다. 2023년 들어 지지율은 40%로 회복됐다. 그러나 자민당 비자금 파문으로 다시 연말부터 지지율은 20%
돌이켜보면 기시다는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어렵사리 당선되었다. 1차 투표에선 국민에게 인기가 있고 당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 고노 다로를 겨우 1표 차로 따돌려 1위를 했고 1, 2위가 겨루는 결선투표에서 주요 파벌 영수들의 지지를 얻어 총재에 당선되어 총리 자리에 올랐다. 총리 취임 4주 만에 치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절대안정 다수인 261석을 획득함으로써 국민 신임을 받아 안정적 정권 운영을 보장받았다. 2022년 7월에 치른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비명으로 사라진 아베의 정치적 유산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숙명을 부여받았지만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여전히 50%대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통일교와의 유착관계가 속속 사실로 드러나면서 지지율은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이시바 시게루
기시다 정부는 2022년 말, 전후 일관되게 고수해왔던 전수방위 원칙과 소극 안보노선에서 벗어나 적극 안보로 탈바꿈하는 큰 걸음을 내디뎠다. 말하자면 일본 안보정책의 전환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전후 내내 ‘국내총생산(GDP)의 1% 미만’ 원칙을 고수했던 방위비 지출을 5년간 두 배로 늘리는 한편, ‘적기지 반격 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미야자와 총리 이래 3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비둘기파 ‘고치카이’의 영수인 기시다 스스로가, 오자와 이치로가 일찍이 주창한 ‘군사적 보통국가’로 한 걸음 바짝 다가서게 된 건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차기 총리 이시바, 고노, 모테기 물망 고노 다로
기시다 외교의 하이라이트는 2023년 3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였다. 그는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G7 회의에 초대했다. 그의 고향 히로시마로 7개국 정상을 초청해 ‘핵 군축, 불확산 선언’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한, 기시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잇단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동맹을 한층 확대 강화하고 미·일 안보의 일체화를 시도했다. 더 나아가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안보협의체)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을 추구하는 전방위 외교에 나섰다. 한마디로 기시다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미국 편에 확실히 줄 서는 선명한 선택을 했고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대결 구도하에서 ‘민주주의 진영 외교’에 충실한 외교를 펼쳤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후 최악의 관계로 일컬어진 한·일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하고 정상 간 셔틀 외교를 복원시킨 일 또한 기시다 외교의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갈등의 뇌관인 징용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로 ‘잃어버린 10년의 한·일 관계’를 일거에 개선시킨 주역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어쨌든 기시다 총리는 강제징용, 수출규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으로 꽉 막힌 난관을 풀고 이웃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레거시로 간주하고 싶을 것이다. 더
다가오는 9월 하순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대여섯 명의 후보가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은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곧 총리가 되는 내각제를 취하고 있어 자민당 총재 경선은 사실상 총리를 뽑는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의 총재선거는 당내 국회의원 표가 50%, 당원·당우 표 50%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유력한 총재 후보로는 국민 인기는 높으나 당내 비주류인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탄탄한 관록의 고노 다로 디지털상,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으로 가미가와 요코 외무상,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도 여성 후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자민당 우월 정당 체제 하에서 어느 후보가 총재가 당선되더라도 한·일 관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제인 한국, 미국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 자민당의 누가 총리가 되어도 이념과 정책의 스펙트럼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