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대행 탄핵 151석’은 나쁜 결정[포럼]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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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
헌법재판소가 또 하나의 ‘문제적 결정’을 했다. 지난 24일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를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인 151석 이상이면 충분하다고 한 결정은 대한민국 국정 안정에 두고두고 큰 화근이 될 것이다.
홈페이지에 공지된 결정 요지에서 헌재는 이 사건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중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임을 애써 강조했다. 이 말장난 같은 표현에 어떤 논리를 강변하기 위한 속셈이 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새로운 공직이나 지위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과는 구분되고, 그래서 대통령이 아닌 원래의 지위인 국무위원으로서 탄핵 되면 족하다고 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그렇게 따지면 대통령은 ‘대통령직 수행 중’인 사람 아닌가.
궐위된 대통령을 대신하는 경우 그 권한과 책임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것이고, 당연히 국정 안정을 위해서 탄핵소추 역시 대통령에 준해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하는 정파에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줄탄핵 면허를 준 것이다. 당장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 무섭게 더불어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에 대한 재탄핵을 협박하고 있다. 지금까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보여온 행태에 비춰 보면 재탄핵이 아니라 재재탄핵에도 거리낌 없을 것이다. 야당의 줄탄핵에 헌재가 탄핵심판 작란(作亂) 으로 화답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탄핵심판 제도의 취지가 공직의 박탈을 통해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했지만, 각하 의견을 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을 제외하고는 정작 민주당발 ‘줄탄핵’을 심리해 ‘줄기각’ 결정하면서 직접 목도했던 탄핵 남용으로 인한 국정 마비와 삼권분립에 대한 위협에는 침묵한다. 헌법 수호를 내세우지만, 헌정 위기를 더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한 원로 헌법학자의 지적처럼 헌재를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결정이 더 큰 작란, 즉 대한민국의 대란(大亂)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헌재가 만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인용 결정을 내린다면 어떤 상황이 초래될까. 이어질 대선 기간에 민주당은 선거판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등 온갖 꼬투리를 잡아 권한대행을 무시로 탄핵소추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멈춰 서고, 민생은 결딴날 것이다. 몇 명의 ‘대행의 대행’이 날아갈지 모른다. 작란에 가담한 6인의 헌법재판관은 불 보듯 뻔한 이런 난장판이 초래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헌재는 국무총리의 지위와 대통령의 지위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하면서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돼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국무총리는 그에 비해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인 민주적 정당성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판단은 헌법재판관들에게도 적용된다. 재판관들이 갖는 민주적 정당성은 국회 동의를 받는 국무총리보다도 못하다. 그런 만큼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절제해야 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헌재의 불공정한 ‘K-재판’ 작란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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