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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 키즈’돌풍 속 日 신세대의 반격 … 올 LPGA 3승씩 ‘자존심 대결’[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여자골프도 뜨거운 한·일전

아시아서도 변방이었던 韓골프
1998년 박세리 US오픈 우승뒤
미국 투어에서만 216승 대기록
신지애는 日투어 역대 상금 1위

日, 자국 경기만 고수하다 뒤처져
MZ선수들 활약하며 전력 엇비슷

 

축구, 야구에 이어 이제 여자 골프도 한일전!

 

‘가깝고도 먼 나라.’ 흔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얘기할 때면 으레 따라붙는 표현이다. 어두운 과거사를 배경으로 거듭되는 정치적 갈등 속에 경쟁과 협력이라는 모순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두 나라의 지정학적 숙명을 담고 있는 말이다.

 

두 나라의 묘한 관계는 스포츠에서도 ‘한일전’이라는 독특한 사회심리적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결코 지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와 열띤 분위기 속에 벌어지는 두 나라의 경기는 종목을 불문하고 항상 극적인 장면과 명승부를 연출한다.

 

한일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그동안 아무리 성적이 부진했던 선수라도 구국의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행여 큰 실수를 하거나 패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나라 팔아먹은 역적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전통적인 국민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에 이어 최근에는 골프에서도 한일 양국의 뜨거운 경쟁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아시아의 골프 종주국이자 세계 제2의 골프 산업 대국의 위상을 과시해 왔다. 반면 한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는 물론 같은 아시아의 대만, 홍콩에도 뒤처진 골프 세상의 변방에 불과했다.

 

한국은 골프 기술과 투어 운영은 물론 골프 클럽 제작, 골프장 설계와 건설 등 골프 산업 전반에 걸쳐 일본에 한 수 배우는 처지였다.


열악한 국내 투어 환경과 비교해 1980∼1990년대 일본 투어는 구옥희, 이영미, 고우순, 임진한, 김종덕, 최경주 등 한국 최고의 남녀 프로 골퍼들이 앞다투어 도전하던 ‘꿈의 무대’였다.

 

투어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골프의 위상에 점차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된 것은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이후부터다.

 

박세리의 성공에 자극받은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등 이른바 ‘세리 키즈’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 여자골퍼들의 실력이 점차 일본 골퍼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반면 일본은 이른바 ‘갈라파고스 현상’으로 골퍼들이 미국 투어 도전을 기피하고 자국 투어에만 집중하면서 두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 갈라파고스 현상이란 오랜 세월 육지로부터 고립돼 독자적으로 진화한 갈라파고스섬의 동물들처럼 세계 추세와 동떨어진 채 일본만의 것을 고수하다 경쟁에 뒤처지는 것을 말한다.

 

1974년 히구치 히사코의 LPGA 재팬 클래식 우승을 시작으로 올해 5월 지사토 이와이의 리비에라 마야 오픈 우승까지 일본은 미국 투어에서 총 24명의 골퍼가 64승을 거뒀다.

 

반면 한국은 1988년 구옥희의 스탠더드 레지스터 첫 우승 이후 올해 5월 유해란의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 우승까지 모두 49명의 골퍼가 216승을 올렸다.

 

일본 투어에서도 2012년 전미정이 한국 골퍼로는 처음으로 상금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4년과 2018년에는 안선주가, 2015년과 2016년에는 이보미가 뒤이어 상금왕을 차지했다. 일본 투어 역대 통산 상금 1위도 한국의 신지애 차지다.

 

그러나 최근 10년 가까이 계속된 한국 골퍼들의 놀라운 활약에 자극받은 일본의 신세대 골퍼들이 투어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양국의 전력은 엇비슷해졌다.

 

2019년 스즈키 아이, 2020-2021년 도쿄 올림픽 여자골프 은메달리스트 이나미 모네, 2022-2023년 야마시타 미유, 2024년 다케다 리오 등 잇달아 한국 골퍼들을 누르고 일본인 상금왕이 배출되었다.

 

올 시즌 미국 LPGA 투어에서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3승을 기록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US 여자 오픈에서도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25명의 골퍼가 출전해 10명의 골퍼가 본선에 진출했고, 일본은 21명이 출전해 역시 10명의 골퍼가 본선에 올랐다.

 

최우열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