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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은 하늘이 정한다…‘하루 이글 4개’로 랭킹2위 꺾은 99위[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그레이스 김 에비앙챔피언십 우승

 

연속 보기로 선두 멀어졌지만
7번홀부터 잇단 이글로 ‘우승’

종목별 운·실력 영향 계산하니
골프는 라운드당 2.69타가 ‘운’

실력이 성패 가르는 게 스포츠
하지만 예상 외의 결과도 ‘매력’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6504야드)에서 열린 여자골프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인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호주의 교포 골퍼 그레이스 김이 대회 마지막 날 마법 같은 행운의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총상금 800만 달러(약 110억 원), 우승 상금 120만 달러(16억 원) 규모의 이번 대회에서 세계랭킹 99위에 불과했던 그레이스 김은 두 차례 연장전 끝에 세계랭킹 2위 태국의 지노 티띠꾼을 꺾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마치 골프의 신이 각본을 쓴 듯한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승리였다. 1타 차 공동 3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그레이스 김은 1번 홀과 4번 홀에서 잇달아 보기를 하며 8언더파로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파5인 7번 홀(482야드)에서 투온을 노리다 벙커에 빠진 후 벙커에서 친 공이 곧장 홀에 들어가는 행운으로 이글을 잡으며 다시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버디 4개와 더블보기 1개로 2타를 줄였으나 선두 티띠꾼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딱 2타가 부족했다. 마지막 파5 18번 홀(484야드)에서 티샷을 페어웨이로 잘 보낸 그레이스 김은 핀까지 190야드 남은 상황에서 4번 하이브리드로 과감하게 투온을 시도했고 공은 핀 바로 30㎝ 옆에 붙었다. 이 기적 같은 이글로 그레이스 김은 공동 1위에 올라 두 사람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18번 홀에서 치러진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그레이스 김은 정규 라운드처럼 티샷 후 4번 하이브리드로 투온을 노렸지만 샷이 감기면서 그린 오른쪽 워터해저드에 공이 빠지고 말았다.

 

티띠꾼 역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두 번째 샷이 다소 길어 그린 바로 옆 러프에 공이 떨어졌다. 하지만 충분히 버디를 할 수 있는 위치로 공을 보냈다. 거의 티띠꾼의 우승이 예상되는 순간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페널티구역에서 벌타를 받고 핀까지 30m가 넘는 거리에서 드롭한 후 친 그레이스 김의 칩샷이 그린에 맞고 서너 번 구르더니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버디지만 벌타를 제하면 세 번째 샷이므로 사실상 이글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두 번째 연장전에 들어간 두 사람 모두 티샷을 페어웨이로 잘 보낸 뒤 투온을 노렸다. 이번에도 4번 하이브리드로 샷을 한 그레이스 김은 그린에 무사히 공을 올렸지만 더 짧은 6번 아이언으로 샷을 한 티띠꾼은 다시 그린 옆 러프에 공을 빠뜨렸다.

 

티띠꾼은 멋진 칩샷으로 공을 핀 2.4m 옆에 붙여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승부는 거기까지였다. 투온에 성공한 그레이스 김은 4.5m 거리의 이글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하루에만 4개의 이글로 우승까지 한 억세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이번처럼 랭킹 차이가 큰 선수끼리의 맞대결에서 하위 골퍼가 상위 골퍼를 이기는 경우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그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승부가 오롯이 실력으로만 결정된다면 대회마다 성적이 거의 세계랭킹 순이 돼야 할 것이다.

 

실력이 스포츠에서 성패를 가르는 주된 요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때로는 막상 실제 경기에서 종종 예상과 다른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스포츠의 매력이다.

 

월가의 유명 투자전략가이자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겸임교수인 마이클 모부신이 수학과 통계학 이론을 동원해 종목별 운과 실력의 영향을 계산한 바에 따르면 스포츠에서 운은 대체로 경기장의 크기와 환경, 경기 선수의 숫자에 비례해 커졌다. 경기장 면적이 축구장 100개 넓이에 달하는 골프의 경우, 라운드당 대략 2.69타가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보듯이 챔피언은 하늘이 정한다는 세간의 속설은 어느 정도 맞는 셈이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