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8대 요건’ 못 갖춘 노란봉투법[시평]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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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
사용자 개념 확대가 핵심 문제
일반성과 명확성 원칙에 배치
이번 개정안의 핵심 논점은 ‘사용자’의 개념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에 있다. 개정안은 사용자를 근로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원청 사업자 대부분을 단체교섭의 당사자 범주에 포함시키려 한다. 이재명 정부는 “모든 원청이 자동으로 사용자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며, 특정한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임금, 정리해고, 성과급, 휴게 시간 등 대부분의 단체교섭 안건이 ‘특정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무제한적인 확대를 가능케 한다.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이라는 표현 역시 추상적 관념에 불과해 결국 ‘사용자성’ 판단 기준은 예측 불가능하고 자의적 해석에 열려 있다.
법원이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 제시하는 ‘업무의 필수성’ ‘사업체계 편입 정도’ ‘집단적 결정의 필요성’ 등도 최종적으로 원청에 책임이 돌아가게 한다. 이처럼 사용자 개념의 확장은 법적 명확성과 일반성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에 기초한 포괄적 책임 귀속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개정안을 “노사 자치의 원칙을 구현한 상생의 법”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자치는 자율적인 계약과 책임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법의 이름을 빌려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를 억지로 교섭 테이블에 앉히는 것은 ‘자치’가 아니라 ‘강제’다.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한 채 정치적 프레임으로 포장한 기만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이 ‘법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법은 일반성, 공표, 소급 금지, 명확성, 내적 일관성, 실현 가능성, 안정성, 집행의 실효성 등 여덟 가지를 갖춰야 한다. 이는 법이 예측 가능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며 실효성 있는 집행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틀이다.
첫째, 사용자 정의에서 일반성과 명확성이 붕괴됐다. 법률상 ‘사용자’는 근로계약 당사자라는 명확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함에도, 이번 개정안은 모호한 문구를 통해 그 대상을 무한히 확장하려 한다. 그 결과, 그 누구도 자신의 법적 지위를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둘째, 내적 일관성과 실현 가능성이 무너졌다. 장관은 이 법이 ‘노사 자치’의 구현이라고 하지만, 교섭 당사자가 아닌 자에게 강제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일관성에 정면으로 반한다. 예컨대, 조선업같이 수백 개의 하청 업체가 얽힌 산업구조에서 원청이 모든 노조와 직접 교섭하라는 것은 이행 불가능한 요구이다. 책임이 아니라 함정이다.
셋째, 법적 안정성 역시 훼손된다. 노동조합법은 노사관계 기본 틀을 정립하는 핵심 법령이다. 이 법이 책임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흐리면 계약의 신뢰와 조직 질서 자체가 흔들린다. 상급단체와 산별노조가 제3자로 개입해 하청 노조를 전위로 원청을 압박하는 구조는, 자치적 협상이 아닌 정략적 개입이 지배하는 관계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정의를 실현하자는 법이 오히려 새로운 불안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더는 법이 아니다. 법의 본질에 비춰 정당성도 없고, 정책적 현실성도 결여된 법을 강행해 얻는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수많은 하청 업체를 조종 가능한 단위로 만드는 귀족 노조와 결탁한 정파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이용될 뿐이다.
결국, 문제는 법의 이름을 빌려 편향된 목적을 관철하려는 데 있다. 법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정과 예측 가능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니다. ‘노란봉투법’은 권력만 쥐면 얼마든지 약탈하고 기생해 나라는 몰라도 ‘우리 편’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양심 불량 선언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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