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명예’ 모두 얻었지만… 공허함에 슬럼프 빠진 매킬로이[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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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마스터스 우승 뒤 엎드려 눈물 족쇄 풀려 좋은 활약 기대 불구 목적 이룬뒤 미래 불안감 커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올해 열린 제89회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남자 골퍼로는 사상 6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성공했다. 지난 2000년 타이거 우즈(미국) 이후 25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와 치른 서든데스 연장전 첫 홀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1.2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순간 매킬로이는 그대로 그린에 주저앉아 엎드린 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승의 기쁨보단 11년 동안 짓눌렸던 마음의 짐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더 커 보였다. 계속해서 들썩이던 그의 어깨는 그동안 그가 얼마나 큰 중압감을 견디며 버텨왔는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10대의 나이에 일찌감치 ‘골프황제’ 우즈의 후계자로 주목받으며 화려하게 골프계에 등장한 매킬로이는 기대에 걸맞게 2011년 US오픈을 시작으로, 2012년 PGA챔피언십, 2014년 브리티시오픈(디오픈) 챔피언십까지 차례로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퍼즐인 마스터스 우승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2014년 이후부터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 아예 끊겨버렸다.
매년 4월만 되면 그에게 쏟아지는 전 세계 골프팬들의 관심과 마스터스 우승 기대는 어느덧 그에게 언젠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의무가 되어버렸다.마침내 매킬로이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하자, 많은 팬과 전문가들은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족쇄에서 풀려난 그가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훨씬 좋은 플레이를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RBC 캐나다오픈에선 2라운드에서 무려 78타를 치며 예선 탈락(컷오프)했다. 기대를 모았던 메이저 대회에서도 PGA챔피언십 공동 47위, US오픈 공동 19위에 그쳤다.
매킬로이의 이 같은 부진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포츠의 세계에선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성적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출전했던 많은 선수가 갑자기 밀려드는 극도의 공허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감에 빠진다. 이른바 ‘올림픽 후 우울증’(포스트 올림픽 블루 신드롬)이다.
올림픽 출전과 메달 획득 하나만 바라보며 4년 내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랐던 선수들이 막상 올림픽이 끝나고 나자 갑자기 목표와 동기의 상실을 경험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타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마이클 펠프스는 15살에 역대 최연소로 국가대표로 발탁된 후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23개의 금메달을 포함, 올림픽에서만 무려 28개의 메달을 딴 미국의 수영 영웅이다.
하지만 이런 그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우울증을 처음 경험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후 우울증으로 극심한 침체기를 겪으며 알코올 중독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매킬로이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1년을 오로지 마스터스 우승과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자 갑자기 길을 잃었다는 느낌과 함께 이제 무얼 해야 할지 불현듯 막막한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US오픈을 앞두고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매킬로이는 자신이 지금 뭘 좇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스터스 우승 이후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장에 가서 연습하는 게 예전보다 조금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이런 그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목표의 설정과 동기 부여일 텐데 이미 골프에서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매킬로이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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